숱한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한지 벌써 31년째다. 창단 초기부터 현재까지 밝은 미래를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 남여 배구부가 같이 운영되는 곳. 서울 배구, 나아가 한국 배구 풀뿌리를 자처하는 이곳. 바로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수유초등학교(교장 최도현)를 찾아가보았다.
튼실한 뿌리
1967년 3월에 개교, 1984년 배구부가 창단되었다. 당시 부임한 김상균 감독은 서울 강북구에 있는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3, 4학년 위주로 신체조건이 좋은 선수 8명을 모집했다. 2년 뒤, 학교에서는 1986년 3월 공식적으로 배구부 창단을 알렸다.
창단 초기, 김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체력훈련을 소화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 기간 학교 내 숙직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다행히 훈련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췄다. 학교 인근에 간이체육관이 건립, 체육관 안에서 체력 및 기본기 훈련을 진행했다.
1986년 8월, 광주에서 열린 제 22회 맹호기 쟁탈 전국 초등학교 배구대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팀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대회에서 세터 김태종(45, 현 수원전산여고 코치)을 중심으로 전 선수들이 고른 활약을 보여준 끝에 결승에서 만난 광주봉주초등학교를 세트스코어 2-0(15-8, 15-4)으로 꺾고 창단 2년 만에 전국규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1989년 8월 제25회 맹호기 쟁탈 전국 초등학교 배구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라 수유초 배구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순탄치 않은 행보를 보였다. 대회 우승은커녕, 예선통과조차 힘겨워했다. 배구부에 책정된 예산도 창단 초기에 비해 대폭 줄어든 탓에 1990년대 후반부터 대회 출전조차 힘들어졌다.
김 감독과 선수들은 열악해진 환경을 탓하진 않았다. 오히려 성적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고 기본기를 갈고 닦았다. 그 중에서 주상용(35, 한국전력)은 동료들과 함께 힘든 시기를 이겨낸 끝에 2005년 V-리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현대캐피탈 부름을 받아 현재 한국전력에서 프로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 수유초 배구부는 큰 변화를 예고했다. 남자 배구부 대신 여자 배구부를 창단,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여자 배구부 역시 창단 후 첫 3년 동안 전국규모 대회 출전 등 눈앞에 보이는 성적을 따라가기보다 팀 초석을 다지는 데 중점을 뒀다. 이 와중에 김하경(21, IBK기업은행)은 2라운드 2순위로 IBK기업은행 부름을 받아 프로무대에 발을 디뎠다.
기다림이 열매를 맺었을 때는 2010년이었다. 1월에 열린 제10회 칠십리기 전국초등학교 배구대회부터 제6회 한산대첩기, 제15회 재능기까지 3개 대회 연속으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8월에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 결승에선 이채린(19, 중앙여고), 이수빈(19, 광주체육고) 활약에 힘입어 지민경(19, 선명여고)이 이끈 안산서초를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를 계기로 남자 배구부 재창단이 급 물살을 탔고, 2012년 10월, 공식적으로 부활을 알렸다.
탄탄대로를 달렸다. 2014년 KOVO 총재배 전국초등학교 배구대회에서 교내 역사상 처음으로 남, 여 배구부가 함께 출전했다. 그해 8월, 최도현 교장이 부임하고서부터 배구부 예산을 늘렸다. 체육관 내 바닥을 새로 깔았고, 올해 조민희, 김민지 코치를 새로 영입하며 훈련에 효율을 더했다.
훈련환경이 예년보다 몰라보게 좋아졌다. 배구부 선수들은 신발끈을 바싹 조여 맸다. 열매는 달콤했다. 회장기, 재능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5월 고성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선 서울 대표로 나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 감독은 “아이들이 스스로 해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훈련한 덕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모두들 열심히 했고, 그간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라며 힘든 준비기간을 견뎌준 선수들에게 고마워했다.
우승 비결은 강한 체력
초등학교 배구부를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고충은 ‘배구를 하고 싶은 아이’를 모집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만 31년째를 맞는 김상균 감독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고민거리다. 그나마 창단 초기에는 배구를 바로 권유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에 김 감독은 무작정 다가가 이야기하기보다는 배구부 모집을 위한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인근 학교를 방문, 학부모 및 선수 본인에게 나눠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12년부터 성북구 교육청 주관 아래 수유초 체육관에서 성북구 내 타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 중에 배구 클리닉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팀에 합류한 선수들은 본 훈련 이전에 적응훈련부터 시작한다. 이후, 배구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재미를 느낄 때, 본격적인 팀 훈련을 소화하게끔 한다.
수유초에서는 기본기 훈련 이전에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체력이 뒷받침되면 기본기를 습득하는 데 있어 빠르게 적응한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시 기본기 훈련할 때 자세가 흔들리며 기본적인 부분을 구사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라는 김 감독 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만약 체력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때, 고학년이 되어 성장속도에 비해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자칫 부상을 당할 우려가 있다. 물론 모든 선수들에게 똑같은 훈련 매뉴얼을 적용하지 않았다. 키에 따라 훈련내용을 달리해야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김 감독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남녀 배구부 모두 적용됐다.
기술보다 체력훈련에 우선을 둔 결과는 올해 수유초가 거둔 성적을 통해 증명되었다. 상대보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공에 대한 집중력도 경기 내내 유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소년체전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요인이 됐다.
우리 선수들을 소개합니다
남자 배구부에선 2016년 소년체전 MVP 강준혁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중앙에서뿐 아니라 왼쪽, 오른쪽에서도 공격을 할 수 있다. 때에 따라 후위에서도 강타를 꽃아 넣는다. 황성찬(13, 레프트), 박상민(13, 라이트)은 리시브 라인을 든든히 지켜낸다. 강준혁과 함께 공격에도 적극 가담한다. 주장이자 주전 세터를 맡고 있는 한승우(13)는 코트 위의 사령관답게 절묘한 세트워크를 통해 공격수들 공격력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여자부에선 김진희(13, 센터), 김유빈(13, 센터)이 팀 공격의 중심이다. 팀 훈련에서도 남자 선수 못지않게 강한 스파이크를 구사한다. 세터 한새빈(13)은 정확한 세트를 구사하며 중앙에 있는 김진희, 김유빈과 호흡이 절정에 달했다. 강유진(13, 레프트)은 팀 내에서 리시브를 전담하며 수비라인의 중추역할을 해내고 있다.
Mini Interview
최도현 교장
배구부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배구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다. 현재도 동호회에서 배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배구부에 애정이 많다.
김상균 감독과 인연이 30여 년째인데?
대단하다. 배구를 사랑하지 않고선 이곳에 오래 있기 힘들다.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남아서 선수들을 양성했다. 나와 인연이 30여 년 되었는데,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배구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올해 창단 31년째다. 어떤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지?
현재까지 배구 저변확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배구를 좋아하는 교장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배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김상균 감독
올해 소년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체력훈련이 효과를 봤다. 더불어 정신적인 부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좋았다. 학부모, 학교에서도 우리를 믿어준 덕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31년동안 수유초 배구부만 지도했다. 본인만의 지도 철학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처음 목표를 크게 잡게 하는 것보다 편하게 운동하게끔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표설정은 6학년 때 해도 괜찮다. 애초에 목표를 크게 잡다가 좌절감에 꿈을 포기할까 걱정돼서였다. 이때는 그저 즐겁게 하라고 이야기해준다.
주목할 선수?
남자는 강준혁, 여자는 김진희를 눈여겨보고 있다. 둘 다 팀 내에서 블로킹, 공격능력이 가장 좋다. 올해 팀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중심이 되어주고 있다.
향후 배구부 운영 방안?
현재 전국에서 남녀 배구부 모두 운영하는 학교는 이곳뿐이다. 계속 운영될 수 있게끔 밑바탕을 깔아놓는 것이 내 임무다. 개인적인 욕심은 내후년을 목표로 소년체전에서 남녀 동반우승을 노려보도록 하겠다.
글/ 권민현 기자
사진/ 신승규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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