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아마추어 배구 현장, 풀뿌리 배구 오늘과 내일

정고은 / 기사승인 : 2016-09-14 11:02: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을 더 뜨겁게 달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끝났다. 40년 만에 다시 한 번 메달 획득이란 꿈을 안았던 여자배구는 기회를 놓쳤다. 관심과 기대가 컸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한국배구는 위기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이에 ‘풀 뿌리 배구가 건강해야 한국배구가 산다’는 취지로 긴급좌담회를 가졌다.


160823YW_배구_대담_09.jpg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8월 22일, 좌담회를 위해 배구 꿈나무를 지도하고 있는 현장지도자들을 급히 초청했다. 시공간 제한으로 급히 섭외했지만, 좌담회 취지에 격하게 공감한 지도자들은 흔쾌히 달려와주었다. 김철용 추계학원 총감독, 김경수 전 강릉여고 감독, 이병설 전 초등연맹 전무이사, 이호철 문일고 감독이 쏟아낸 육성을 그대로 전달한다. 한 참석자는 “하고 싶은 말을 10분의 1조차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진행/ 김동준 편집장 정리/ 송소은 인터넷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리우올림픽 4강 진출에 아쉽게 실패했다. 소감은 어떤가?


키와 체력 등은 역대 국가대표 중 가장 좋았다. 대회 전에 메달 획득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체력과 정신력은 물론 전략 전술 등 세심한 부분을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림픽은 온 국민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일반 대회와는 다르다. 상대인 네덜란드는 경기를 거듭하며 좋아졌다. 그러나 우리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점이 아쉽다.


리베로가 서브 리시브에서 흔들린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본다. 김해란은 원래 한번 실수하면 연속으로 실수하는 스타일이다. 김해란이 리시브 불안을 보인 것이 경기 흐름까지 다운시켰다. 김해란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안타까워하는 소리다.


이번 대표팀에 안산 출신 선수들이 많아서 더욱 기대했다(김연경 김수지 배유나는 안산서초, 황연주는 원곡중 출신이다). 한국배구가 저변을 확대하고 국민들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메달을 꼭 따주길 원했는데 아쉽다. 도쿄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땄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세터 장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세터 육성에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준비가 태부족인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메달을 따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훈련과정에서 코칭스태프 등 지원인력이 부족해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듯했다. 하드웨어(신장)는 상당히 좋아졌는데 소프트웨어(체력, 기본기, 정신력 등)가 미숙하다. 한국 배구는 언제부터인가 공격 루트가 너무 단순해졌다. 한국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 색깔이 없어졌다.


단조로운 한국배구 지도자 책임


한국 배구가 왜 단조로워졌다고 생각하나?
세계적인 배구 추세는 아포짓, 후위공격, 중앙 파이프 공격 등 다양하게 공격 루트를 찾아 이용하는 것이다. 브라질, 세르비아, 중국은 강력한 오른쪽 공격수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여자 중·고등부에서는 속공, 시간차 공격을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 범실이 많이 나온다는 까닭에 지도자도, 선수도 하려고 하질 않는다. 예를 들어 B퀵을 하려면 점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선수가 없다. 다양한 기술을 소화할 재목이 없다. 양효진은 중앙 속공 능력은 있지만 외발 공격에는 약점이 있다.
공격 루트가 단순해졌다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국내 배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득점이 나온다. 굳이 애써서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국내 리그에서도 어렵지 않게 포인트를 낸다. 다양성이 부족해지고 있다.
지도자가 필요성을 느끼고 다양한 플레이를 만들어내려고 하면, 상당히 많은 시간과 고된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 가지 득점루트가 완성된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아이를 혹사시킨다’라고 여기는 학부모가 더러 있다. 선수들도 힘들어해서 지도자가 강제로 교육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선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다. 지도자는 반성할 점이 없는가?
솔직히 역량이 부족한 지도자가 많다는 점을 고백한다. 지도자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선수생활을 위해 전학 온 학생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기본적인 기술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 충격 받은 일도 있다.
현재 고등학교 팀에는 비교적 전문성을 갖춘 지도자가 꽤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보다는 초·중학교에 더 유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배구 첫발을 떼는 어린 학생선수에게 제대로 된 기본기를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상급 학교로 진학해야 한다. 다 커서 기본기를 익히려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앞뒤가 바뀐 모습이다.


일선 지도자들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니 충격이다. 이유는 뭘까?
지도자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우선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 월 급여가 150만~180만 원으로 너무나 적다. 게다가 1년 단위로 계약해 안정성조차 확보해주지 못하고 있다. 배구 지도자는 학교 내에서 입지도 열악하다. 정말 경비원보다 못하다. 이러한 여건에서 지도자를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라리 다른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오랫동안 사명감을 가지고 지도자 생활을 해오신 분들도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곧 지도자 공백 사태가 올 것이다.
유능한 코치를 영입하려면 무엇보다 물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도자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 마련과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들도 처우가 안 좋다 보니 ‘내가 선수를 키우겠다’는 열정이 떨어진다. 그들에게 사명감을 앞세운 헌신만 강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160823YW_배구_대담_24.jpg


(사진 설명 : 이병설 전 초등연맹 전무이사 )



지도자 육성프로그램 도입 시급


KOVO(한국배구연맹)는 유소년 배구 육성 사업을 열성적으로 펼치고 있다.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KOVO에서는 유소년 배구에 투자하는 것보다 우선 지도자를 교육시키는 게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맹은 배구 활성화를 위한 어린이 체육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광범위한 홍보 효과와 관중 확보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사업에 연간 6억 원 이상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배구 현실에서는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물론 그것도 거시적 안목에서 배구 발전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엘리트 배구가 쓰러져가고 있다. 연맹이 쓰는 예산을 우선 집행해야 할 부문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토론이 필요하다. 일선 현장 배구가 활성화하는 데 먼저 투입돼야 한다.
망가진 엘리트 스포츠를 살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일반 학교에서 스포츠 클럽을 활성화 한다고 한들 그 중에서 몇 명이나 배구를 계속 하겠는가. 스포츠 클럽에 투자하는 동안 엘리트 육성은 죽어가고 있다. 물론 그것이 연맹 책임은 아니다. 협회는 본래 설립 취지에 맞게 각성해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매년 11월에 대한민국배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배구대회가 개최된다. 강원도 인제군이 5년 계약으로 유치했다. 엘리트 학교 팀이 참가하지 않고 단순 클럽 팀이 참가한다. 하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선수들이 보인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엘리트 제도권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연맹에서도 유소년 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볼 때마다 같은 취지와 성격을 띤 대회를 중복해서 개최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배구인으로 보면 예산 낭비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연맹 주관 유소년대회를 본 적 있는가? 유소년 대회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놀이터 수준이다. 이들이 배구에 흥미를 느끼게 하고, 인성교육 차원으로는 훌륭하다. 이들이 열렬한 배구팬은 될 수 있다. 그러나 배구 선수로 편입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이 먼저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160823YW_배구_대담_41.jpg


(사진 설명 : 이호철 문일고 감독)



‘고사’ 엘리트배구 지원 절실


KOVO가 들으면 굉장히 섭섭해 하겠다.
연맹에서 클럽 배구에 계속 투자하는 이유는 ‘배구 선수’ 저변이 아니고 ‘배구 팬’ 저변 확대이다. 이를 통해 우수 선수 발굴을 연계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배구 선수 출신들을 지도자로 활용하며, 일자리를 창출해준 효과는 긍정적이다.
연맹이 말하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정말 급한 것은 엘리트다. 현재 엘리트 초등학교 팀에 선수가 많아야 10명이고 보통 6~7명이 고작이다. 이 가운데 장기적으로 키울 재목은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계속 배구 선수생활을 유지해갈 수 있는 선수가 별로 없다.


프로배구가 활성화 됐다. 제도부문에서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드래프트 제도가 우리나라 배구발전에 가장 방해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드래프트 제도가 가지는 긍정적 측면은 있다. 프로구단은 별다른 투자 없이 선수를 데려간다. 사실 프로에 진출할 만한 선수는 초·중·고를 거치며 많은 투자가 된 상태이다.
프로진출 선수 별로 출신학교에 대해 지원금을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지원금에 대한 혜택은 상급학교에 몰려 있고, 그나마도 일부 학교에 편중돼 있다. 대다수 학교들은 ‘남에 집 잔치를 부럽게만 바라보는 형편’이다.
강소휘 선수에 대한 학교지원금이 올해 처음으로 초등학교에도 배정됐다. 학교장이 무척 기뻐했다. 한 푼이 아쉬운 실정에 정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일부 학교에 한정된 이야기다.
프로배구가 지역연고제를 표방하고 있다지만, 연고권 역내 학교 지원은 미미하다. 프로야구가 초기 성공한 것은 철저한 지역연고제 덕이다. 당시에는 연고권역내 출신 선수를 의무적으로 선발하게 했다. 배구도 프로구단을 정점으로 수직적 수급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프로구단 선수 정원이 15명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프로가 되면서 철저한 몸 관리로 선수 생명이 상당히 길어졌다. 이 때문에 프로에 갓 입단한 선수가 오히려 조기에 퇴출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구단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선수단을 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전 실업배구 시절에는 지금보다 선수단 규모가 컸다. 배구로 입단했지만, 직장생활로 이어갈 수도 있었다. 프로가 예전 실업배구 시절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선수 정원을 늘려 2군 제도도 운영해야 배구를 하고자 하는 선수도 늘어날 것이다. 2군 제도가 없는 프로 종목은 배구뿐이다.


160823YW_배구_대담_47.jpg


(사진 설명 : 김철용 추계학원 총감독)



프로구단 선수정원 확대해야


근본적 원인은 배구 선수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풀 뿌리 배구가 튼튼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서 말했듯 지도자들이 열정적이지 못하다. 좋은 재목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직접 발굴한다 한들 부모와 만나 개인 돈으로 밥이며 커피를 사며 설득해야 한다. 초등학교는 한해 배구 예산이 500만~1000만 원 정도다. 이것은 교기(校技) 육성 지원금에서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배구부 예산을 빼면 다른 부분에서 그만큼 돈을 쓰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여러 선생님들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배구 예산을 최소화하려 한다. 사실 배구뿐 아니라 모든 종목이 고사 위기다. 야구 등 인기종목은 부모들이 기꺼이 지갑을 털어 육성한다. 배구를 시키는 부모가 지갑을 열겠는가?
학생 수는 줄어들었고, 학부모들도 운동을 안 시키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 한국 배구는 레크리에이션 배구만 남는다. 심각한 수준이다.


학생 선수들이 무분별하게 전학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학부모들은 어떤 지도자가 잘 가르치고, 어떤 학교가 성적이 나는지 잘 알고 있다. 프로진출에 유리한 학교를 찾아 유랑생활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학부모들끼리 뭉쳐 단체로 전학 가기도 한다. ‘우리 애만 잘 되면 된다’라는 부모 심정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전학은 결국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선수가 떠난 학교는 더 이상 배구부 유지가 안 돼 해체수순을 밟게 된다. 그렇다고 선수를 받은 학교는 잘 될까? 당장은 그럴지 모르지만, 굴러온 돌과 박힌 돌끼리 갈등을 일으킨다. 결국 함께 망하는 길로 간다.
일선 지도자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학교 책임자는 자신 임기 내에 성적 내기만을 바란다. 임명권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지도자도 덩달아 눈앞 성적에 급급하게 된다. 소신을 가지고 기본기에 충실하겠다고 한들, 성적을 내지 못하는 그에게는 그 자리마저 보장되지 않는다.


160823YW_배구_대담_61.jpg


(사진 설명 : 김경수 전 강릉여고 감독)



창단보다 기존 팀 유지가 우선


그렇다면 엘리트 체육에서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새로 팀을 창단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기존에 있는 팀을 지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한 팀이 창단하면 다른 한 팀이 없어진다. 한정된 자원으로 지금 있는 팀이라도 잘 유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팀간에 예의를 지켜야 한다.
지도자가 없어서 팀이 해체할 판이다. 연맹에서 지도자 임금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기껏 지도자로 육성해놓으면, 프로팀이 선수로 뽑아간다. 마흔을 넘겨 은퇴한 지가 까마득한데… 프로선수라니… 코미디다. 당사자야 눈앞에 연봉이 보이는데 그걸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역연고제가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말로만 하고 있고 실천의지가 없다. FA로 이적할 때도 이적 보상금을 구단에만 주지 말고 출신학교에도 투자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학교에 한 종목씩 운동부를 육성하도록 정부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체육이 살 수 있다. 금년부터 스포츠토토 기금을 엘리트 체육에 못 쓰게 한다. 국가에서 엘리트 체육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에 있는 팀을 잘 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엘리트를 잘 지키면서 생활체육 스포츠 클럽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 지도자를 충분히 배치하고, 지도자도 연수를 통해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초중고가 살아나지 못하면 결국 프로도 망하게 돼있다. 꼭 명심해야 한다. 아마추어 지도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프로가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재정적인 지원이 한쪽에 편중되지 않게 고르게 분포돼야 한다. 일단 선수가 많아지면 작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훈련이 고되거나,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면 선수는 전학을 가겠다는 둥, 그만 두겠다는 둥 고자세로 버틴다. 지도자는 선수 앞에서 작아진다는 하소연을 곁들였다.)
운동으로 성공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운동을 안 시킨다. 따라서 연봉도 높아져야 하고 은퇴 후 삶도 보장돼야 한다. 언론에서 운동에 대한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좌담회를 마치며, 미래가 보이는 청사진을 그려 4년 뒤 도쿄올림픽에서 영광을 그려보려 했던 희망은 사라지고, 레크리에이션 배구만 남을 것이란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스토리 발리볼


어느 초등학교 배구 지도자의 하루


수업종이 울리기 전. 학생들을 모아놓고 수업에 충실하도록 당부한다. 그리고 주장에게 방과후 해야 할 과제를 간단히 설명하고 아이들을 교실로 들여보낸다. 교무회의를 마친 교장선생님을 찾아 뵀다. 선생님께 올해 배구부 운영 예산이 1000만 원밖에 책정되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이 많으니 더 늘려줄 수 없는지 여쭤보았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더 많이 지원해주고 싶지만 한정된 예산 안에서 늘리는 건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대신 학교 주변 교회나 프로 구단 등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겠다고 하셨지만, 그런 지원도 한 두 번이지 매번 보장해줄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교장실을 나와서는 옆 학교에 다니는 학생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주변 학교에 우리학교 배구부 프로필을 돌리며 키가 큰 학생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발품을 판 끝에 간신히 찾은 아이였다. 학부모님께 드릴 작은 선물을 마련하여,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는 배구에 대해 이야기 했다. 배구부 현황과 배구 선수로서의 장래에 대해 설명 드리며 아이에게 배구를 시키면 좋을 거 같다고 권유해 드렸다. 하지만 학부모님은 냉랭한 반응이다.



“설사 아이가 운동을 잘 해서 프로에 간다 해도 다른 종목만큼 연봉이 많지 않다면서요. 그나마 프로선수가 못되면 마땅한 대체 진로도 많지 않고요. 그런 운동을 우리 아이에게 시킬 수 없어요”라며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도 더 이상 학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하고 학교로 돌아와야 했다.



아이들 수업이 끝나고 훈련을 시작했다. 준비운동, 정리운동을 다 포함해서 3시간 정도밖에 운동 시간이 없어서 기본기 위주로 가르쳤다. 당장 볼을 때리는 것보다 정확한 스텝과 자세를 연습시켰다. 혼자서 10명에게 볼을 때려주고, 자세를 잡아주고 하니 많이 힘들었다.



훈련을 마치니 프로구단에 입단한 제자가 찾아왔다. 지난 ‘스승의 날’에도 찾아 뵙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말한다. 제자와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했다. 제자는 ‘선생님 사정 뻔히 아는데…”라며 굳이 자신이 계산했다. 40년을 지도자 생활을 했지만, 처음 지도자를 시작하는 이들과 별 차이 없이 월급이 200만 원조차 되지 않는다. 제자들에게 맛있는 밥 한끼조차 제대로 사주기 어렵다.



그래도 내가 가르친 제자가 국가대표가 되고 유명한 프로선수가 되어 많은 인기를 끌고 국가 명예를 높이는 모습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점점 제자 수도 적어지고, 나도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머리 속에는 다른 학교로 전학 갈 거라고 내게 통보한 몇몇 선수 얼굴이 어른거린다. 조금만 더 환경이 좋았다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오늘따라 유난히 밤이 길다.



(전·현직 지도자들이 들려준 현장상황을 바탕으로 각색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글/송소은 인터넷 기자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