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히 차려 입은 두 아나운서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재 카페에 자리잡고 앉았다. 멀리서 바라보니 CF속 한 장면이 따로 없다. 놀라긴 일렀다. 이들이 입을 열면 매력은 몇 곱절이 됐다. 수년간 다져온 내공에 한 번, 그 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는 위트에 또 한 번 감탄했다. 2016~2017시즌 V-리그 전망부터 좌충우돌 실수담까지. 윤성호, 신승준 두 남자가 거침없는 수다를 쏟아냈다.
윤성호 SBS 스포츠 아나운서
신승준 KBS N 스포츠 아나운서
(왼쪽부터 윤성호, 신승준 아나운서)
Chapter2 아나운서, 아나운서를 말하다
이제 두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스포츠 아나운서는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신 성호 선배가 한참 선배이니 먼저 말씀해주세요. (신승준 아나운서가 37세, 윤성호 아나운서가 35세이지만 입사는 윤성호 아나운서가 먼저 했다.)
윤 대학생 때 무역학과였는데 복수전공으로 언론홍보를 했어요. 그때 일부러 발표 수업을 들었어요. 청중들 앞에서 내가 과연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트레이닝을 했죠. 저는 애당초 스포츠 캐스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업 때 진짜 생방송인 것처럼 정장 입고 직접 메이크업까지 하고 갔어요.
처음엔 비아냥이나 조롱이 있었죠. ‘쟤 뭐야? 왜 이리 오버해?’ 이렇게요. 제 열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저만을 위한 방송을 했어요. 좋은 방송인이 되려면 공부도 중요하지만 잘 놀아야 해요. 그 덕에 저는 입사할 때 면접에서 점수를 땄어요.
신 같이 노래방 한 번 가보셔야 해요. 난리나요.
윤 면접 때 성대모사를 했어요. 배우 주현 씨 등이요. 임원 분들께서 카메라 테스트 때부터 빵빵 터지신 거예요. 최종 면접 올라가서도 그때 그거 다시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흔쾌히 보여드렸죠. 이 인터뷰도 지면을 통해 인사 드린다는 게 굉장히 아쉽네요. 기회가 된다면 성대모사 시리즈로 보따리 한 번 풀게요.
신 저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3년 다녔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밤 12시까지 하루에 파워포인트만 100장씩 만들었어요. 스트레스가 너무 컸죠. 근데 유일하게 재미있는 한 가지가 클라이언트 앞에서 발표하는 거였어요. 제 어릴 때 꿈인 아나운서가 불현듯 생각났죠.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려고 서른 살에 사표 냈어요. 근데 때마침 회사에 자리가 나서 운 좋게 들어왔죠.
아나운서가 되려면 외모, 발음, 돌발상황 대처 능력 등 많은 걸 갖춰야 할 텐데요. 본인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신 판단력? 튀진 않지만 무난한 어휘를 끌어오는. 저는 안티 팬이 별로 없는데 절 아는 사람도 없어요(웃음). 조용히 쭉 가는, 그냥 무난하게 욕먹지 않는 중계를 하죠.
윤 제가 얘기할게요. 저희는 개인적으로 참 가까운 사이예요. 제가 입사가 빨라서 감히 승준이 형 앞에서 선배인 거죠. 형이 꼬박꼬박 선배라고 해줘서 고마워요. 정말 좋아하는 형이라는 걸 떠나서 후배 아나운서로 봤을 때 느낌은 방송을 정말 잘해요. 맛있게 방송하는 대표적 캐스터예요. 거슬리는 게 없고 듣기에 편해요. 음성, 톤, 발성, 샤우팅 등이 불편하면 안 돼요.
잠시만요! 제가 존경하는 강준형 선배 전화가 왔어요. 이것도 꼭 써주세요. ‘존경하는 강.준.형 선배님’까지 셋이서 친밀한 관계예요. 인터뷰 끝나고 보기로 했거든요.
신 자기가 배구 전문인데 왜 저희 둘만 하냐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윤 강준형 대선배를 뒤로 하고 저희가 더스파이크 독자를 만난다는 게 어불성설이에요.
신 그러나 바람직하죠. 저희 마음이 급해요. 빨리 빨리 물어봐 주세요(웃음).
윤 이 욕망 아저씨. 아무튼 신승준 아나운서가 가진 편안함은 본래 성품, 성격에서 나오는 듯 해요. 억지로 연출하거나 노력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스포츠 캐스터로서 큰 획을 긋지 않을까 싶어요.
신 제가 작년에 3명에게 칭찬 받았어요.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께서 “우리 집사람이 잘 보고 있다고 전해달라더라”라고 하셨어요. 문용관 해설위원은 “우리 집 마누라가 너 잘한대”라고 하셨고요.
이호근 아나운서가 2달 뒤에 결혼하는데 예비 장인께서 “신승준 캐스터가 너보다 편하게 잘하더라”라고 하셨대요. 공통점은 타깃이 50대 후반이에요. 그 외엔 칭찬 받아본 적이 없어요.
윤 저희 가장 큰 공통분모가 여기서 나오는 거예요. 저도 중·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 사랑 받는 스타일이에요.
신 윤성호 선배는 돌연변이예요. 예전엔 이런 캐릭터가 없었어요. 이런 표현은 죄송한데 처음 등장했을 때 ‘이렇게 까부는 사람이 없었는데 왜 이리 들이대지?’라고 생각했어요. 선배님 죄송해요. 주체 못할 정도로 넘치는 끼가 있어요. 다재다능하고 익살스럽고요.
‘윤성호’하면 자신감, 어깨, 남자. 그냥 질러요. 홈런! 스파이크! 최근엔 더 다듬어져서 완숙해졌어요. 절제미를 갖추며 고급스러워졌죠. 예전엔 거칠기만 했는데 지금은 티라미슈 같아요. 거친 것과 부드러움 조화가 잘 됐어요.
윤 제가 계란도 반숙보다 완숙을 좋아해요.
스포츠 중계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니 가끔 실수도 있을 텐데요. 아직도 기억하는 내 아나운서 인생 최고 실수가 있으신가요?
윤 바야흐로 11년을 되돌려야 하는 일입니다. 제가 입사한지 3개월 정도 지나서 막 수습 딱지를 뗄까 말까 할 때였어요. 운 좋게 고교 농구 결승전 중계를 맡게 됐죠. 사건은 그 전날 시작됩니다. SBS스포츠 전체 회식이었어요. 어느덧 시간은 새벽 3~4시고 저는 귀가해 잠을 청했죠. 그때 중계가 충북 제천에서 오전 11시 50분에 시작이었어요.
다음날 눈을 떴는데 아침 9시가 넘은 거예요. 현장 생중계는 최소 3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서 준비하는 게 원칙이거든요. 찰진 욕과 함께 스프링처럼 침대에서 튀어 올랐어요. 10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죠.
경기도 용인 수지에서 출발해 극적으로 오전 11시쯤 현장에 도착했어요. 아, 여러분 안전운전 하시고 늘 제한속도 지키셔야 합니다. 아무튼 사람인지라 그때부터 쓱 배가 고프더라고요. 경기장 근처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었어요.
신 아… 경기 중에 뱃속에서 전쟁이 날 수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복선이 나오네요.
윤 이야기가 좀 더러워요. 2쿼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갑자기 뱃속에서 문을 막 두드리더라고요. 지금 나와야겠다며. 저는 말렸죠. 지금 아니다, 나와야 될 때가 아니다. 점점 힘들더라고요.
네가 나오면 난 어쩔 수 없겠다. 나오면 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넷에 ‘X 아나운서’ 이런 단어가 그려지면서. 하필 제가 그날 아이보리색 정장을 입고 갔어요. 아무나 소화할 순 없는 건데.
신 샤우팅 하다 보면 의지와 다르게 문을 열어줄 수가 있거든요.
윤 3쿼터 시작할 때 즈음 제 두 손은 교차돼 상하복부를 연신 쓰다듬고 있었고, 멘트는 최소화했어요. 저희 표현으로 출석부 부른다고 하는데 선수 이름만 불렀죠. 딱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첫 번째 그냥 싼다. 두 번째 화장실로 뛰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온다. 마지막 4쿼터 A고가 B고에 2점차로 앞서고 있었어요.
마지막 7초 점수는 두 점차. 근데 종료 1초를 남겨놓고 B고가 2점슛을 성공한 거예요. 그 순간 괄약근이라는 친구가 모든 힘을 놓을뻔 했어요. 연장전까지 승부가 다 끝나고 덤덤하게 화장실로 걸어갔어요. 변기에 앉는 순간 천국을 봤죠. 그땐 모든 게 다 감사했어요. 제 방송 11년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죠.
신 어우 드러워. 이거 못 쓰겠다. 이게 무슨 냄새지(웃음)? 저는 방송 실수는 기억에 남을만한 게 없어요. 조심성이 많거든요. 저희는 밥도 2시간 전에 미리 먹어요. 탈이 나더라도 최소 방송 시작 30분 전에 다 해결이 되게요. 제가 사내 행사 전문 MC거든요. 한 번은 이임식이 있었어요. 새 사장님께서 취임사를 마치셨어요.
그리고 제가 “자 이것으로 사장님 퇴임식을 마치겠습니다!”라고 한 거예요. 취임하신 날 제가 보내버린 거죠.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였어요. 전 직원이 다 보고 있잖아요. 난리가 났죠. 근데 당시 사장님께서 아무 말씀 안 하고 넘어가셨어요. 그 후부터 사내 행사만 하면 떨려요. 시무식부터요. ‘종무식이라고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요(웃음).
윤 그게 전화위복이 돼서 SBS 왔을 수도 있겠다.
신 그럼 난리 났죠. 경쟁 치열해지지. (이)동근이 그만 해야지.
두 분 배구 외에도 맡아보신 종목이 많잖아요. 그중 가장 애착 가는 종목은 어떤 것인가요?
윤 EPL(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박지성 선수 한창 날아다닐 때였어요. 제가 나름 바이브레이션 샤우팅이란 걸 했는데 축구 팬 분들께서 많이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지금은 프로배구에 제일 마음이 가요. 더스파이크 인터뷰라고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아니고요. 배구를 제외하면 아무래도 야구죠. 정말 사랑하는 종목 중 하나는 복싱이에요. 무척 매력 있어요.
신 저는 본 투(Born to) 축구이기 때문에요. 축구 중계를 하고 싶어서 캐스터가 됐거든요. 근데 저희 회사에 축구 컨텐츠가 없어요. 배구 말고는 살아남을 길이 없죠.
다시 직업을 고를 수 있다면, 또 스포츠 아나운서를 선택하실 건가요?
윤 전 좋아요. 근데 그보다 프로 운동선수가 돼보는 게 꿈이에요. 저희 집이 대대로 스포츠 집안이거든요. 제 아내(신정자 씨)도 농구선수였고요. 저는 꿈이 진짜 많았고, 지금도 많아요. 요즘은 배우 해보고 싶어요.
제가 ‘미스터 고’라는 영화에 출연한 200만 배우예요. 지금도 영화배우 윤성호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으면 하네요. 김용화 감독님! 다음에 또 불러주시면 좋은 작품 함께하고 싶습니다(웃음).
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언제 그만둘지에 대해 항상 생각해요. 인생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직업을 최소 3~5개는 가져보고 싶어요. 지금 두 번째 직업인데 서른 살에 입사할 때부터 다음엔 뭐할지 계속 고민했어요. 여행 플래너가 제일 유력해요. 지난달에 강준형 선배가 이탈리아로 여행 갔는데 6박 8일 스케줄을 제가 짰어요.
이호근 신혼 여행도 엑셀로 일정 만들어서 호근이 와이프에게 보내고 피드백 받아서 수정해줬어요. 3박 4일동안 그것만 붙들고 있었더니 제 아내가 “적당히 해라. 왜 그걸 밤낮으로 하고 있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너무 좋아요. 잠 안 자도 신나요.
윤 만약 저희가 현역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승준이 형이 여행사 대표하고 제가 가이드 하면 엄청난 호흡이 나올 거예요.
신 거기다 메이저 리그 구장 탐방, 유럽 축구장 투어를 넣는 거예요. 우리가 꿀 성대로 3시간동안 하면 끝나죠. 저는 그쪽에서 유학 생활도 했어요. 최근 6년 연속 매년 휴가 때 유럽여행을 갔어요. 유럽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거죠. 빚내서 가는 거예요. 적금 깨고 가서 집에 돈이 없어요(웃음).
마지막으로 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는 청춘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신 여자 아나운서가 경쟁률은 훨씬 세지만, 남자 아나운서 되는 게 더 힘들어요. 여자는 거의 매년 뽑는데 남자는 아무리 재능, 열정이 있어도 자리가 없어서 안 뽑거든요. 본인이 준비하는 시점에 타이밍이 안 맞으면 안 되는 거예요. 저 다음에 호근이가 들어왔는데 저랑 6살 차이거든요. 호근이 32살인데 막내가 없어요. 그 밑으로 언제 뽑을지 기약이 없는 거죠.
윤 스포츠 DNA가 있어야 해요. 몸에서 피가 끓어야 돼요. 스포츠 없으면 못 살겠다는 열정이 없다면 이쪽에서 살아남기 정말 어려워요. 몸으로 직접 하는 스포츠뿐 아니라 보는 것까지 두루 섭력해야 해요.
선수들 진정성, 땀, 눈물 등 여러 깊숙한 부분을 잘 끌어내서 전달해야 해요. 그래서 어려운 거고요. 대본도 없으니 무조건 다 애드립으로 해야죠. 그래서 평상시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여러 분야에 대해 많이 알아야 돼요. 음악, 드라마, 유행어, 정치 등 세상 돌아가는 일을 놓치지 마세요.
신 일단 아나운서가 됐다고 해도 끝이 아니에요. 처음엔 얼굴 안 나오는 스포츠 하이라이트 더빙만 계속해요. 몇 년은 설거지 해야 해요. 배구장 나가서 어깨 펴고 물 한 모금 마시려면 몇 년간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 하거든요.
윤 홀에 나가서 서빙 하려면 주방 청소부터 시작해야 하잖아요. 문턱을 넘어서 나오기까지 진입장벽이 높다 보니 힘들 거예요. 입사했다고 바로 현장 나가서 중계방송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나름대로 고된 훈련을 거쳐야죠. 합격했다고 꿈을 이룬 건 절대 아니라는 걸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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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쉴 틈 없이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두 아나운서가 어떻게 무수히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금 자리에 올랐는지 느껴졌다. 2016~2017시즌 SBS 스포츠 윤성호, KBS N 스포츠 신승준 아나운서 목소리가 배구코트 구석구석에 정겹게 메아리 질 것이다.
글/ 최원영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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