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노래가 있다. '내 인생의 OST'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보는 힐링캠프. 네 번째 주인공 삼성화재 김명진(25)은 아직 미생(未生)이다. 한 시즌도 온전히 소화해본 적 없지만, 그는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간다.
(사진: 삼성화재 제공)
김명진의 OST PART1. 윤종신 ‘지친 하루’
거기까지라고 누군가 툭 한 마디 던지면
그렇지 하고 포기할 것 같아
잘한 거라 토닥이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제2의_박철우 #임도헌_감독의_신뢰 #허리디스크_극복
제2의 박철우. 영생고 시절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 김명진은 그렇게 불렸다. 이후 한양대를 졸업하고 2013~2014시즌 2라운드 7순위로 삼성화재에 입단한 김명진. 호기롭게 프로 무대에 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팀에 ‘진짜’ 박철우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데뷔 첫 시즌 교체 선수로 정규리그 20경기 51세트에 출전해 74득점(공격 성공률 60.36%), 챔피언결정전 4경기 7세트에서 2득점(공격 성공률 33.33%)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때 그는 생각했다. 배구를 그만하겠노라고.
“프로에 적응하고 훈련을 따라가는 게 힘들었어요. 자신감을 많이 잃었나 봐요. 배구가 잘 안되니 심적으로 너무 힘겨웠죠. 팀에 필요 없는 선수가 될까 두려웠어요. 당시 신치용 감독(현 삼성화재 단장)께서 붙잡아주셨어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죠. 형들도 제 옆에 다가와 괜찮다고 조언해줬어요. 덕분에 잘 참고 이겨낼 수 있었어요. 이제와 돌아보니 그때 배구를 그만두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
모두에게 감사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조언은 유광우가 건넨 한 마디였다. “광우 형이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우리도 다 너처럼 힘든 시기를 겪어봤다. 너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들더라고요. 고비를 잘 넘겼다고 생각해요.”
2014년 11월 말 박철우가 입대하며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지난 시즌은 달랐다. 윙스파이커였던 레오 대신 아포짓 스파이커 그로저가 오며 김명진은 다시 설 자리를 잃었다. 출전 시간과 득점이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그리고 2016~2017시즌이 다가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했으나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원하는 만큼 실력이 따라와주질 않았다. 그렇기에 개막 전 KOVO컵 대회에서 활약이 얼떨떨했다. 그는 조별리그 득점 부문에서 63점으로 파다르(우리카드)와 바로티(한국전력)에 이어 전체 3위에 올랐다. 국내 선수 중에선 단연 1위였다. 삼성화재는 타이스가 자국 네덜란드 대표팀에 차출됐으나 김명진이 외국인 선수 급 활약을 선보였다.
“팀원들이 제가 공을 잘 때릴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연습도 많이 했고요. 타이스가 없어서 공격 훈련에 더 신경 썼어요. 만족스럽진 않아요.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 해 아쉬워요.”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은 김명진에게 ‘네가 에이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해라.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고 격려했다. 임 감독은 김명진을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뢰가 깊었다.
“감독님은 자상하시고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세요. 저도 책임감 갖고 더 열심히 했어요. 개인훈련도 빼놓지 않았고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그래요. 칭찬을 들으면 큰 힘이 돼요. 제 몫을 충분히 했을 때 잘했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 같아요. 항상 믿음을 주시니까 더 잘해서 보답하고 싶어요.”
올 11월 27일, 박철우가 전역한다. 김명진에게 박철우는 어떤 의미일까.
“철우 형은 확실히 잘하죠. 제가 뒤에서 보고 배울 게 많아요. 같은 포지션이라 저에게 조언도 아낌없이 해줘요. 공격이나 블로킹 기술도 알려주고요. 선의의 경쟁을 하는 거죠. 나이 차이가 좀 있는데 형이 살갑게 다가와줘서 무섭진 않아요. 선배로서 팀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게 멋지더라고요.”
박철우 그늘에 가렸던 김명진에게는 ‘박철우 복귀’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터.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누가 뛰든 팀 승리가 최우선이에요. 형이 먼저 뛰고 안될 때 제가 투입되더라도 들어가서 잘하면 되는 거고요. 그렇게 서로 도와가며 팀이 우승하는 게 먼저예요. 출전 기회가 적은 건 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거잖아요. 다음엔 더 많이 뛸 수 있게 공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훈련하자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2015~2016시즌 삼성화재는 창단 후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삼성화재만이 가진 강점을 믿기 때문이었다. “삼성화재라는 팀이 지닌 전통이 있어요. 팀워크도 돈독해서 분위기가 항상 좋아요. 선수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다독여주는 문화가 있거든요. 특히 선배 형들이 잘 이끌어주죠.”
저녁에 핸드폰을 걷는 등 생활 면에서 엄격하고, 유독 고되게 훈련을 하는 것도 삼성화재가 가진 전통 중 하나다. “솔직히 처음에는 힘들었죠. 그런데 형들 보니까 우승을 위한 거니 다 견뎌내더라고요. 이제는 함께 파이팅 외치면서 이겨내요. 다른 팀은 안 가봐서 저희가 더 힘든 건지는 모르겠네요. 아마 선수들은 다 이렇게 훈련할 거예요(웃음).”
지난 2014~2015시즌 급성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김명진. 그전부터 허리 통증에 시달려왔다. 그는 이번만큼은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지난 11월 9일 우리카드 전에 종아리 부상으로 결장했으나 12일 KB손해보험과 경기에서 곧바로 돌아왔다.
“팀에서 꾸준히 관리하며 보강하다 보니 안 아파요. 다른 선수들처럼 조금씩 아픈 곳은 있는데 크게 아프진 않아 괜찮습니다. 올해는 건강하게 한 시즌 치러야죠.”
김명진의 OST PART2. 크러쉬 ‘가끔’
있을 때 잘할걸 후회하면서도
돌이킬 자신이 없는걸
이렇게 나만 바보처럼
내 맘 가두고서 살아
#날개없는_천사 #매력포인트_눈웃음 #자유보다_절제
배구선수, 더 나아가 20대 김명진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배구 이야기를 할 때는 내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표정에 드디어 미소가 스며들었다. 그는 하양초에 다니며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다. 그저 키가 커서 스카우트됐다. 당시 163cm로 또래 중 가장 큰 편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뭣 모르고 했죠. 시키는 대로 하고요. 제가 그때 공부를 잘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선 제가 운동보다는 공부하길 바라셨어요. 근데 초등학교 땐 웬만하면 다 공부 잘하지 않나요(웃음)? 원래 꿈은…뭐 였을까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초등학교 때 키가 커 미들블로커를 맡았던 김명진은 스스로 왼손잡이를 택했다. 김세진(현 OK저축은행 감독) 등 당대를 주름잡던 선수들이 대부분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진학 후 그는 줄곧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했다. 외국인 선수와 포지션이 겹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원래는 오른손잡이였죠. 왼손으로 공격하는 것도 하다 보니 금방 적응되더라고요. 어렵진 않았어요. 지금도 밥 먹을 때나 글씨 쓸 때는 오른손을 써요. 운동할 때만 왼손잡이죠. 제 포지션에 대해서는 만족해요. 저만 잘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한양대 시절에는 ‘너무 순해서 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삼성화재 선배 중 한 명은 “명진이가 ‘난 아무 것도 몰라요~’ 라며 순진한 거 같죠? 절대 아니에요. 그 뒤에 본 모습이 감춰져 있어요”라고 증언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김명진은 어느 때보다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해요. 성격은 밝아서 좋은데 거절을 잘 못 해요. 예를 들면 하기 싫어도 그냥 따라가요. 소심한 편이죠. 원래 말주변이 별로 없어요. 근데 저 착해요. 주위에서 친구들이 넌 날개만 없지 너무 순하다고, 천사라고 해요.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냐고요. 이게 진실이에요.”
김명진은 팬들에게도 인기가 대단하다. 아마 훤칠한 외모와 순수한 매력 때문이 아닐까. 비시즌 열린 팬 미팅에서는 “전 태어날 때부터 잘생겼습니다”라며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바로 손사래 쳤다.
“팬 미팅 때는 시켜서 그렇게 말한 거예요. 저는 전혀 제가 잘생겼다고 생각지 않아요. 단 한 번도 그렇게 느껴본 적 없어요. 가장 잘생긴 선수는…그거 뭐 굳이 말해야 되나요(웃음)? 류윤식 형이요. 같은 팀이기도 하고, 요즘 아이돌 연예인처럼 생겼잖아요. 제가 인기 많은 비결은 항상 밝게 열심히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매력 포인트는 눈웃음? 아, 제가 말했다고 하면 안 돼요!”
팬들에게 받은 편지와 사진을 ‘보물 1호’라 부르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김명진. 경기 후 숙소로 돌아가면 팬레터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읽어본다고 한다.
“편지 정말 많이 받아요.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짜예요. 제가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이라 울어본 적은 없어요. 사진 선물도 받으면 진짜 감사하죠.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멋지게 찍고 인화해서 가져다 주시니 정성이 얼마나 대단해요. 그 외에 딱히 받고 싶은 선물은 없어요.”
김명진은 보기보다 단순하다. 특별한 취미생활이나 스트레스 해소법 등이 없다. 평소 쉬는 날이면 그저 먹고, 잔다. “쉬는 게 제일 좋아요. 특히 자는 거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걸 즐겨요. 그렇다고 엄청 많이 자는 것도 아니에요. 아, 아니구나. 한 9~10시간?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한 번에 오래 자진 못 해요. 깼다가 다시 자요.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잠자요. 음악을 듣거나 외출 받으면 나가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요.”
편식은 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만 많이 먹는다. 가장 즐기는 음식은 고기다. 최근 다른 음식에 눈을 돌렸다. “장어를 별로 안 먹었는데 요즘은 숙소 밖에 나가면 꼭 사먹어요. 몸에 좋다고 하니까요. 먹는 양은 일반인에 비하면 많죠. 밥 4~5그릇 정도? 엄청 많이 먹는 건 아닌 거 같네요!”
매일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운동에만 전념하는 선수들. 가끔은 숙소 생활이 지겹고 힘들기도 하지만 프로이기에 견딘다. “물론 자유를 원하죠. 지금은 배구를 하고 있으니까 참는 거예요. 감독님께서 운동선수 첫 번째 덕목이 ‘절제’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잘 새기고 있어요.”
삼성화재에서 네 번째 시즌을 맞은 김명진은 팀원들과 두루 잘 지낸다. 특별히 친한 선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집요하게 한 명만 골라달라고 하자 ‘이민욱’ 이름이 나왔다. 삼성화재뿐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민욱이가 저보다 한 시즌 뒤에 입단했는데 그때 룸메이트였어요. 보기보다 장난꾸러기더라고요. 저는 얌전한 편인데 말이죠. 전 항상 배구 생각만 하거든요. 민욱이가 ‘명진이 형은 무척 젠틀해요’라고 했다고 써주세요. 다른 팀 선수 중에는 KB손해보험으로 이적한 (이)선규 형이 정말 잘 챙겨주시고요, OK저축은행 (곽)명우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친해요.”
김명진의 OST PART3. 노라조 ‘형(兄)’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자신감과_자책감 #내꿈은_농부 #팀밖에_모르는_바보
김명진이 본 ‘배구선수 김명진’ 장단점은 무엇일까. 임도헌 감독은 “불안하게 연결된 공을 처리하는 능력이 좋고, 후위 공격에 능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신장(198cm)에 비해 블로킹은 아쉽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장점은 긍정적인 거예요. 굉장히 낙천적이고 성실해요. 잠은 많지만 훈련 시간만큼은 집중해야죠. 배구 기술적으로는 아직 한참 모자라요. 가장 보완하고 싶은 건 역시 블로킹이죠. 개인 훈련을 열심히 해서 나아지긴 했는데 갈 길이 멀어요.”
아이러니컬하게도 김명진은 긍정적이지만 자신감이 없는 선수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환한 미소 뒤에 숨겨진 그늘이 생각보다 컸다.
“배구가 잘 안 되더라고요. 고민이 많아요. 못하니까요. 제가 마음 속에 다 담아두는 편이거든요. 잘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할 수 있어’ 하고 주문을 걸어요. 그래도 쉽지 않네요.”
배구로 인해 괴로워하면서도 배구가 마냥 좋다는 그. 코트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라 한다. “싫다가도 좋고, 좋다가도 싫어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애증 관계죠.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그래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거쳐 마지막 관문을 넘었잖아요. 프로선수가 됐으니까요. 갖춰진 환경에서 원 없이 배구할 수 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2016~2017시즌 V-리그 현역 남자선수 중 최고령은 방신봉(41, 한국전력)과 여오현(38, 현대캐피탈)이다. 나이뿐 아니라 기량도 정상급으로 유지하고 있다. 김명진도 가능하면 은퇴를 최대한 먼 훗날로 미루고 싶다. “언제 은퇴를 하게 될까요? 잘 모르겠어요. 최대한 버텨야죠. 그래야 제가 좋아하는 배구를 오래할 수 있으니까요. 아주 오랫동안이요.”
대학생 김명진은 은퇴 후 교수가 되고 싶었다. 프로선수 김명진은 한 가지 막연한 꿈이 있긴 하지만 이후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대학생 때는 교수되는 게 쉬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주 어렵다는 걸 알고 다른 걸 고려 중이에요. 사실 저는 시골 가서 농사짓고 싶어요. 가끔 TV에 나오는 거 보면 매일이 평화로워 보이더라고요. 근데 이건 그냥 농담으로 넘겨주세요. 나중에 유니폼을 벗어야 할 때가 되면 그 상황에 맞게 무언가 하게 되겠죠. 벌써 걱정하진 않으려고요.”
김명진에게 목표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팀’이다. “팀이 우승하는 거요. 저는 그거 하나예요. 팀에 최대한 도움이 되고,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게 목표예요. 조금 욕심 내보자면 인정받는 선수가 돼서 나중에 두고두고 후배들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그래도 무조건 팀 우승이 먼저입니다.”
2016~2017시즌이 시작된 지 약 한 달째다. 김명진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지 못 했다. 그러나 흔들려선 안 된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공든 탑은 쌓는 데 오랜 시간이 들지만,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김명진은 그렇게 단단해질 것이다.
Behind Story 1
추가 인터뷰를 위해 김명진과 통화하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김명진 목소리가 마이크에 댄 듯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는 단박에 그가 화장실에 들어갔음을 직감했다. 혹시 급한 볼일이 있다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김명진은 그런 게 아니라며 단지 ‘조용히 인터뷰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Behind Story 2
김명진과 인터뷰는 리그 개막을 앞둔 10월 13일 진행됐다. 삼성화재 홈 개막전(10월16일)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그날 은퇴식이 예정된 고희진 이름이 나왔다. 선배 은퇴가 아쉽지는 않냐는 질문에 크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던 김명진. 그는 고희진이 코치가 된 사실이 비밀인줄 알았단다. “아, 기사 나왔어요? 계속 팀에서 코치님으로 볼 수 있으니 좋아요”라며 자연스레 웃어넘겼다.
PROFILE
포지션: 아포짓 스파이커
생년월일: 1991.03.27
신체 조건: 198cm 89kg
출신교: 하양초-현일중-영생고-한양대
글/ 최원영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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