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덕이 형 얼굴이 생각났어요. 부모님이 아니고(웃음).”
벌써 3년 전인 2013년 8월 1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2013~2014시즌 V-리그 남자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은 전광인(25)은 대뜸 서재덕(27)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전광인은 “지명되는 순간 재덕이 형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라면서 “대학 때 날 많이 괴롭혔는데 그 밑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힘들 것 같다”고 해 취재진은 폭소를 터트렸다. 전광인은 곧바로 “재덕이 형이 날 자주 깨무는 등 장난을 많이 쳤다”라며 “장난을 안 받아주면 이불을 화장실에 놔두기도 했던 형”이라고 웃음 지었다. 전광인에게 서재덕은 잘 때 반드시 필요한 ‘이불’ 같은(?) 형 이었다.
左광인·右재덕 콤비
2011~2012시즌 전체 2순위로 KEPCO(한국전력)에 입단한 서재덕과 2년 뒤 같은 팀에 둥지를 튼 전광인은 성균관대 선후배 사이다.
당시 이들을 지휘했던 박종찬 성균관대(현 홍익대) 감독은 “재덕이는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힘든 훈련도 성실함으로 이겨냈다. 어느 포지션에 놓아도 제 몫을 하는 선수”라고 했다. 또 “전광인은 ‘제2 신진식’이 될 재목이었다.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는데 책임감이 강했다”라고 덧붙였다.
둘은 신장도 나란히 194㎝. 성균관대 시절 ‘좌광인-우재덕’ 콤비는 2011년 전국대회 4관왕을 이끌었다. 이후 2013 월드리그에도 함께 국가대표 윙스파이커와 아포짓스파이커를 맡아 월드리그 잔류에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왼손잡이 오른쪽 공격수였던 서재덕은 프로에 온 뒤 수비형 윙스파이커로 변신에 성공했다. 물론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에 가면 본업인 아포짓스파이커로 고감도 스파이크를 때려낸다.
서재덕은 “매년 대표팀에 뽑힐 때마다 포지션에 대한 아쉬움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라며 “이젠 어느 자리든 익숙하다. 리시브를 많이 받아야 하는 날개 공격수가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적응됐고, 가끔 대표팀에서 오른쪽을 맡는 것도 재미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라고 웃었다.
전광인은 폭발력있는 공격을 자랑한다. 수비도 곧잘 한다.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서재덕이 가진 안정된 리시브와 전광인이 보이는 공격력은 우리 팀 최고 무기”라며 “전광인은 공격력이 뛰어나지만 수비도 웬만한 리베로만큼 할 줄 안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전광인은 이미 성균관대 2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을 정도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비시즌에 항상 대표팀에 나가 휴식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광인은 “올해 부상 때문에 대학 시절 이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았는데 마음이 복잡했다”라며 “(대표팀은)언제나 영광스러운 자리다. 다시 뽑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꼭 국제 무대에 나서고 싶다”라고 강한 책임감을 드러냈다.
가끔은 ‘톰과 제리’처럼 심한 장난도 치지만 전광인과 서재덕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본다. 예능 프로 <삼시세끼>에서 함께하는 ‘차줌마’ 차승원과 ‘참바다’ 유해진이 보여주는 브로맨스(남자들끼리 갖는 매우 두텁고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배구 코트에서는 서재덕과 전광인이 보여주는 특급 케미를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서재덕은 전광인을 보며 “가끔은 친구 같은 동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떻게 하면 더 골탕 먹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라고 익살맞게 미소 지었다. 팀 내 룸메이트이기도 한 둘은 한국전력에서 때론 울고 웃는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물론 항상 웃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재덕은 2014~2015시즌 중반 권영민 박주형(당시 현대캐피탈)과 1대2 임대 트레이드로 한국전력을 떠나야 했다. 경기 후 뒤늦게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 서재덕은 전광인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결과적으로 시즌 중 임대 트레이드는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서 없었던 일이 됐지만 이미 서재덕은 짐을 싸서 현대캐피탈 숙소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로 향했다. 당시 서재덕이 떠난 한국전력 숙소에 있던 전광인은 “지금 추운데 이불(서재덕 애칭)이 없다”라는 SNS 글을 남겨 많은 팬들을 눈물 짓게 했다.
비록 트레이드는 무산됐지만 서재덕은 당시 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항상 장난기 가득했던 서재덕이지만 트레이드가 틀어진 뒤 한동안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 때마다 서재덕을 다독여줬던 것은 바로 2살 어린 동생 전광인이었다. 당시 수원(한국전력 홈 구장)에서 만났던 서재덕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트레이드로 흔들렸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더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독이 됐다. 다시 돌아와 달라진 건 없지만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인 서재덕은 묵묵히 팀을 위해 몸을 던졌고, 그는 2014~2015시즌 수비 부문 1위에 올랐다. 덕분에 한국전력은 3년 만에 ‘봄 배구’를 경험했다. 비록 시몬과 송명근이 버틴 OK저축은행에 2경기 모두 풀 세트 접전 끝에 패했지만 역대급 명승부를 펼쳤다.
남자 배구에 없어선 안 될 기둥으로
2014년이 서재덕에게 힘든 한 해였다면 전광인에겐 2015년이 시련이 닥쳐온 시간이었다. 발목과 무릎 등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그로 인해 전광인은 2016년 월드리그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고, 서재덕만이 홀로 출전했다. 6연패로 3그룹 강등에 몰렸던 한국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체코, 이집트, 네덜란드와 3연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기적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당시 일등공신은 서재덕이었다. 서재덕은 장충시리즈가 끝난 뒤 “항상 있던 (전)광인이가 없어서 허전했다”면서 “며칠만 잠깐 (대표팀에) 와서 아르바이트로라도 뛰라고 농을 건네기도 했었다. 그래도 소속팀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라고 형 같은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남자배구를 나타내는 현재이자 미래인 둘은 함께일 때 비로소 거칠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눈빛만 봐도 서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가끔 서로를 때리는 격한 세리머니도 형제 같은 둘이기에 가능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한국전력으로 이적한 베테랑 미들블로커 윤봉우(34)는 “(둘이)함께 해온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훈련하거나 경기를 할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것들이 자주 느껴졌다”면서 “장난도 많이 치지만 운동하거나 코트에 들어가서는 달라진다. 강한 집중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주춤했던 서재덕-전광인 콤비는 2016 청주·KOVO컵 프로배구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한국전력이 처음으로 정상에 등극하는 기쁨을 누렸다. 더 나아가 같은 소속팀을 넘어 한국 남자 배구에 없어선 안 될 기둥으로 성장했다.
부상을 털어내고 탄력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온 전광인은 컵대회 MVP 마저 차지했다. 전광인은 “그 동안 상대 팀이 우리를 좀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라며 “이번 시즌에는 컵대회에서 보여준 상승세를 V-리그까지 잘 이어가 우승에 도전해보겠다”라고 힘줘 말했다.
혹자는 현재 한국 남자배구가 대위기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한국 남자 배구에는 스타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서재덕과 건강함을 되찾은 전광인이 있기에 아직은 좀 더 믿어볼 만하다.
글/ 이재상 뉴스1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한국전력 제공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1월호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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