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도 어김없이 대학리그를 평정한 인하대. 수장 최천식 감독에게 올해 인하대가 겪은 희로애락을 묻고, 더 나아가 한국대학배구연맹 전무이사로서 목소리도 들어봤다. 더불어 1학년이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루키 차지환까지 만나봤다.
1976년 창단한 인하대는 오랜 전통과 무수히 많은 우승 기록을 지닌 배구명가다. 특히 2006년에는 다섯 개 대회 전관왕과 2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는 등 떡잎부터 남달랐다. 지난해 역시 전관왕(대학리그, 1·2차대회, 전국체육대회 우승)으로 우승컵을 휩쓴 데 이어 올해도 2차대회를 제외한 모든 우승트로피가 인하대 몫이었다.
바탕에는 11년째 인하대를 이끌고 있는 최천식 감독이 있다. 2005년 4월 인하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꾸준히 팀을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10월 12일, 전국체육대회 우승을 끝으로 2016년 모든 경기가 마무리됐다. 최 감독은 여러 감정이 뒤섞인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너무 힘들었다. 나보다 선수들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정말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 팀도 중간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래도 잘 버텨서 좋은 마무리를 하게 돼 기쁘고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인하대에도 속사정은 있었다. 선수들간 사소한 감정이 팀 내 불화로 번진 것. 매 경기 이긴다는 목표를 세우고 큰 그림을 그리던 인하대에 위기가 닥쳤다.
“상대방과 경쟁하는 것을 떠나 내가, 우리 팀이 제대로 나설 준비가 되어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어려워진다. 내가 믿고 좋아하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마음에 더 크게 남지 않나. 그런 갈등을 해결하며 팀을 다시 견고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선수들도 나도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인하대가 주춤하는 사이 대학리그 판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1차대회 준결승에서 경희대가 인하대를 제압하고 결승에 오르는가 하면 중부대는 그런 경희대를 꺾고 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며 완전히 강 팀 반열에 올라섰다. 한편 홍익대는 대학리그 6강에서 5위에 그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1, 2차대회에서는 연거푸 예선 탈락하며 추락했다. 최 감독은 이러한 지각변동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중부대가 무서운 이유는 팀워크 때문이다.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신장은 작은 편이지만 배구를 굉장히 즐기면서 한다. 코트에서 뛰는 선수뿐 아니라 웜업 존에 있는 선수들까지 마치 내가 경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함께 즐긴다. 그것이 중부대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주요한 비결이라고 본다. 기존 강호들이 무너진 것은 내부적인 문제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 팀 어디에서든 균열이 생겨 그것이 경기력 부진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최천식 감독은 “어느 팀이든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해결 방법은 결국 대화하는 것뿐이다. 서로 상대편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인하대는 여전히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세터 이호건이 ‘2년차 징크스’로 고생했지만 주위 도움으로 무사히 이겨냈다.
“다른 학교 선수보다 신장도 크고 선수 구성이 좋다. 내가 세터를 해보지 못 했기 때문에 주위 선배들이 호건이를 많이 도와줬다. 선수들도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무엇보다 팀이 하나로 뭉쳐야만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많은 이들이 인하대 천하를 만든 최 감독 지도 법을 궁금해했다. 그는 자율적인 방식을 추구했다. 선수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끔 했다. 든든한 조력자도 있었다. 최 감독은 공을 타인에게 돌렸다.
“나도 선수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선수들 마음을 잘 안다. 감독이나 코치가 너무 자기 방식을 강요하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될 수 있으면 선수들에게 맡기려 한다. 올해는 내가 대학배구연맹 전무이사를 맡게 돼 예년보다 신경을 못 썼다. 이상래 코치가 아이들을 다독이며 이끌어줬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나보다는 이 코치가 고생을 많이 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말이 있다. 승리에 익숙한 인하대는 이기는 법을 아는 팀이다. 설사 지고 있어도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일까. 인하대는 ‘자만’을 가장 경계했다.
“자신과 자만, 실수와 실패는 한 글자 차이지만 굉장히 다르다. 자만이 반복되다 보면 실수를 한다. 목표를 세우고 최대한 노력해도 실패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는 안 된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못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습했던 걸 코트에서 얼마만큼 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방심해서 실력 발휘를 다 못 한다면 정말 바보 같고 어리석은 짓이다. 이 부분을 선수들에게 강조했고, 잘 따라와줬다. 이는 훗날 선수들이 대학을 졸업해 프로나 실업 팀에 가서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올해 인하대 공격 중심이었던 3학년 레프트 김성민이 얼리(졸업 전 드래프트 참가)로 드래프트에 나섰다. 따라서 내년에도 올 시즌과 마찬가지로 저학년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어야 한다. 현재 2학년인 세터 이호건과 리베로 이상혁, 1학년 윙스파이커 차지환과 아포짓스파이커 한국민, 미들블로커 송원근 등이다. 최천식 감독에게 청사진을 물었다.
“신입생들이 합류하면 팀에 잘 융화될 수 있게끔 하는 게 우선이다. 동계 훈련 때 기본기 연습에 비중을 많이 둘 예정이다. 포지션 변경도 있을 것이다. 김성민이 나간 자리는 어떤 선수가 메울지 지켜봐야 한다. 변화가 많이 생길 듯 하다. 내년 선수단 구성은 올해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아질 것 같다. 어쨌든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대학은 준 프로다. 매 경기 이겨야 한다.”
이제 단순히 인하대 감독이 아닌 대학배구연맹 전무이사로서 4년을 보내게 된 최천식 감독. 선수와 팀, 연맹 등 모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선수들을 위한 연맹이 되어야 한다. 내년에는 경기 일정이나 진행 방식, 시간 등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며 부상도 방지하고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 경기 수를 줄이더라도 선수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운동을 재미있게, 중부대처럼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연맹에서 회의를 했는데 좋은 의견이 많이 나왔다. 신입선수 합격자 발표가 나면 선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불법 스포츠 도박 방지, 대학 생활 전반에 관한 오리엔테이션, 학점 관리 등에 대한 내용이다. 프로 신인선수 드래프트 일정도 앞당겨 선수들이 더 좋은 조건으로 프로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목표다. 또, 대학선수 중 졸업하지 못 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선수들이 많다. 심판이나 전력분석관 등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최천식 감독은 발전을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힘줘 말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각 팀 선수들이 감독에게 솔직한 의견을 내주면 감독들이 이를 취합해 감독 회의에서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선수들을 위한 게 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대학리그가 점점 흥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선해야 할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제 시즌이 끝났으니 구체적인 방안을 짜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겠다.”
[SIDE STORY] 내 이름은 차지환, 특급 신인이죠
인하부고 졸업 후 올해 인하대에 입학한 윙스파이커 차지환. 1996년생(20세)으로 동기들보다 한 살 더 많은 그는 201cm로 키도 한 뼘 더 크다. 2016 전국대학배구리그 챔피언결정전이 끝나고 차지환은 MVP와 신인선수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마지막 전국체육대회까지 마무리 짓고 그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한 해를 돌아봤다.
“개인적으로 올해보다 작년 전력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주축 선수들이 많이 빠져 중심을 잡아줄 4학년이 별로 없었다. 팀이 불안할 때도 있었는데 3관왕으로 잘 마무리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대회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게 다 끝난 건 아니다. 쉬더라도 몸 관리 잘하며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다.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너무 느슨해지지 않게 잘하겠다.”
개인 타이틀을 두 개나 얻은 것에 대해서는 겸손한 답변을 들려줬다.
“리그 초반에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경기에 투입되면 흔들릴 때가 많았고, 후보 선수로 빠지기도 했다. 자신감을 많이 잃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졌다. 올해는 나 대신 (박)광희 형이 리시브를 많이 소화해줬다. 덕분에 내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최천식 감독도 차지환에 대한 조언을 남겼다.
“솔직히 지환이가 MVP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자칫 자만하고 게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환이가 잘한 건 맞다. 수상한 게 기쁘겠지만 한편으론 조심해야 한다. 이 상을 발판 삼아 앞으로 얼마나 더 노력하느냐에 따라 더 좋은 결과도 얻어낼 수 있다. 지환이는 잠재력이 무한하다. 배구 기술보다는 웨이트를 통해 체중을 늘리며 몸을 만들고, 체력을 길러야 한다. 부족한 점들을 보완한다면 내년에는 더 무서운 선수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지환은 미래에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각오를 밝혔다.
“내년에는 성민이 형이 팀에 없다. 내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아 부담이 크다. 하지만 책임감을 갖고 해내고 싶다. 특히 리시브 연습을 많이 해서 공수 모두에서 더 나은 활약을 보여드리고 싶다.”
* 배구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1월호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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