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영원한 맞수에 대하여

정고은 / 기사승인 : 2016-12-15 10:30: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라이벌(Rival). 듣기만 해도 사람을 묘하게 흥분시키는 이 단어는 라틴어로 강(江)을 뜻하는 ‘리부스(rivus)’, 강물을 함께 사용하는 주민들을 뜻하는 ‘리발리스(rivalis)’에서 유래된 단어다.


욕망은 끝이 없기에 강물을 함께 사용하다 보면 결국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경쟁하면서도 공생하는 사이, 그게 바로 라이벌이다. 그래서 라이벌은 적(enemy)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 적은 그저 섬멸시켜야만 하는 존재지만, 라이벌은 다르다. 서로 존재로 인해 자극을 받고, 더욱 발전하는 동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라이벌이다.


세계 역사상 수많은 라이벌이 존재해왔다. 라이벌이 있기에 세계 역사는 더욱 풍성해졌다. 스포츠도 라이벌을 빼놓고는 이야깃거리가 반 이상은 줄어들 정도로 수많은 라이벌 관계가 팬들에게 기쁨과 환희, 슬픔과 좌절이 점철된 감정을 느끼게 해왔다.


ansdb540.jpg


2005년 출범한 프로배구에도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에서 손꼽히는 라이벌이 있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두 팀을 빼놓고는 V-리그 역사를 논할 수 없다. 삼성화재가 창단된 1995년 이후 한국 배구 역사는 두 팀이 주연이 되어 써내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팀은 한 때 라이벌을 넘어 적대 관계에 놓였던 적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두 팀이 상호 협력하고 프로배구 ‘붐 업’을 위해 수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두 팀 라이벌전을 ‘V-클래식 매치’라고 새롭게 명명하게 됐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다.


어느덧 두 팀이 라이벌 역사를 써내려 온지도 20년이 넘었다. ‘V-클래식 매치’를 통해 상생을 모색하기로 한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두 팀이 어떻게 라이벌 역사를 시작하고, 발전시켜왔는지 그 풍성한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보자.


라이벌 시작, ‘불세출 윙스파이커’ 신진식을 둘러싼 스카우트 파동
삼성화재는 창단 준비 과정에서 당시 대어급 신인들을 싹쓸이하면서 기존 구단들-현대자동차서비스(현대캐피탈 전신), 대한항공, LG화재(KB손해보험 전신)와 갈등을 빚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양대 김세진(현 OK저축은행 감독), 성균관대 김상우(현 우리카드 감독) 등을 주축으로 1995년 11월 7일 삼성화재 배구단이 창단됐다.


삼성화재 창단멤버는 10명. 최소 엔트리 12명을 충족시키지 못해 1996년 슈퍼리그를 건너뛴 삼성화재는 이듬해에도 신인들을 싹쓸이 한다. 당시 대어급이라 불리던 졸업생 중 경기대 후인정(현 한국전력 코치)만이 현대자동차서비스 유니폼을 입었을 뿐 나머지 대어급 신인들은 삼성화재 푸른빛 유니폼을 받아 들었다. 그 중 현대자동차서비스가 ‘오매불망’ 졸업만을 기다려온 성균관대 신진식(전 삼성화재 코치)이 삼성화재로 입단하게 되면서 라이벌 역사는 시작된다.


신진식이 속해있던 성균관대 배구부는 원래 현대자동차서비스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신진식은 졸업 후 현대자동차서비스로 입단하게 약속돼 있었다. 그러나 1995년 11월 삼성화재 배구단이 창단됐고, 1996년 즈음 삼성그룹이 성균관대를 인수했다. 성균관대 배구부와 삼성화재 구단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신진식을 비롯한 방지섭 강근수 김명철 등 당시 성균관대 졸업생이 자유경쟁 스카우트에 따라 삼성화재에 입단하게 됐다.


배구계에 떠도는 풍문에는 삼성그룹이 성균관대를 인수하는 조건 중 하나가 신진식 삼성화재 입단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대학 시절부터 역대 최고 기량을 인정받았던 신진식 위상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신진식에 지원을 하던 현대자동차서비스는 법정 소송까지 진행했다. 결국 삼성화재 측이 현대자동차서비스에 위약금을 물어주는 선에서 해결됐지만, 이 스카우트 파동 속에서 신진식 삼성화재행을 끝까지 반대했던 당시 성균관대 김남성 감독이 물러나게 됐다.


오랜 공방 끝에 ‘좌진식 우세진’이라는 한국 배구사의 가장 뛰어난 좌우 쌍포를 갖추게 된 삼성화재는 첫 출전한 1997년 슈퍼리그부터 위용을 뽐내게 된다. 이후에도 최태웅(현 현대캐피탈 감독), 석진욱(현 OK저축은행 수석코치), 장병철(현 한국전력 코치), 신선호(현 성균관대 감독) 등 당대 최고 선수들을 영입한 삼성화재는 2003년 슈퍼리그와 2004년 V-투어까지 8연패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현대자동차서비스는 1997년과 1998년, 2000~2004년까지 준우승에 머무르며 절치부심 시기를 보냈다.


tlschl540.jpg


신치용 VS 김호철, 동갑내기 세터 출신 라이벌전
대한민국 세터 계보에서 첫 머리에 이름을 올려놓은 김호철 감독이 이탈리아리그 지도자 생활을 접고 2003년 현대캐피탈 사령탑 자리를 맡으면서 두 팀간 라이벌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삼성화재 초대 사령탑인 신치용 감독(현 단장)과 김호철 감독은 1955년생 동갑내기다. 신치용 감독은 부산 성지공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 입학했으나 당시 동갑내기인 한양대 김호철에 밀려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80년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한국전력 배구단에 입단했지만, 선수생활을 오래하지 못하고 곧바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5년간 한국전력 배구단에서 코치 생활을 한 신 감독은 삼성화재 창단 감독으로 화려하게 등장, 호화멤버를 앞세워 한국배구 최고 명장 반열에 오른다.


김호철 감독은 한양대를 졸업한 뒤 금성통신(KB손해보험 전신)에 입단해 두 시즌을 뛴 후 이탈리아 리그로 진출했다. 뛰어난 세트워크와 리더십으로 멕시카노 파르마 클럽을 1부리그로 승격시키고, 1983~1984년 우승까지 이끌며 ‘황금의 손(Mani d’Oro)’이란 별명도 얻었다.


현대자동차서비스로 돌아와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뛴 김호철 감독은 다시 이탈리아 리그로 건너가 1995년까지 선수로 뛴 뒤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03년까지 이탈리아 리그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2003년에야 국내로 돌아와 신치용 감독과 지략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현대캐피탈 사령탑에 오른 뒤 김호철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첫 해에는 한 번이라도 삼성화재를 이기고, 둘째 해에는 삼성화재를 넘어서고, 셋째 해에는 우승을 차지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말은 현실이 됐다. 2004 V-투어에서 삼성화재 77연승을 저지한 김호철 감독은 프로배구 V-리그 원년인 2005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챔프전에서는 삼성화재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김호철 감독은 이듬해 2005~2006시즌 숀 루니와 후인정, 이선규-윤봉우를 앞세워 정규리그 우승과 동시에 챔프전에서도 삼성화재를 꺾고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삼성화재 챔프전 10연패를 저지해냈다.


2006~2007시즌엔 정규리그 우승은 삼성화재에 1승이 밀려 내줬지만, 챔프전에서 3전 3승을 거두며 V-리그 2연패 달성에 성공하게 된다.



김호철 감독과 숀 루니에게 밀려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문 것은 신치용 감독이 외국인 선수 선발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삼성화재는 미국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던 프리디를 영입했다. 그는 1m96cm 단신인지라 타점이나 파워보다는 테크니션에 가까운 선수였고, 주공격수 보다는 보조공격수에 특화된 선수였다.


반면 현대캐피탈 루니는 2m6cm 장신을 앞세운 타점으로 주공격수 노릇을 해줄 수 있는 선수였다. 챔프전 연속 패배를 거울 삼아 신치용 감독은 이후 안젤코와 가빈, 레오로 이어지는 V-리그 역사에 남을 외국인 선수들을 차례로 스카우트하며 다시 한 번 ‘삼성화재 천하’를 일궈냈다.


이들을 뽑은 이유에 대해 신치용 감독은 “당시엔 철저한 무명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가까운 선수들이었다. 처음에 데려올 때는 ‘뭐 저런 선수를 데려 왔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배고픈 선수들’이었고 성품이 좋아 조직력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내 배구에 잘 따랐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엄청난 훈련 량을 소화해낼 수 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화재는 안젤코와 가빈을 앞세워 현대캐피탈에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두 팀은 2007~2008, 2008~2009, 2009~2010시즌까지 세 차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고, 그 결과는 모두 삼성화재 승리였다. 특히 2009~2010시즌 챔피언 결정전은 7차전까지 치러질 정도로 V-리그 챔프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명승부로 손꼽힌다. 7차전 5세트 14-11에서 가빈이 오픈 공격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확정한 순간 신치용 감독이 그대로 코트 바닥에 드러누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다.


이후 2010~2011시즌에는 대한항공이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해 그간 여섯 시즌 동안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만이 누렸던 챔피언 결정전 잔치에 균열을 냈다. 당시 정규리그 3위에 그쳤던 삼성화재는 현대캐피탈과 플레이오프에서 3전 전승, 대한항공과 챔프전에서 4전 전승을 거두며 챔프전 4연패를 달성한다. 2003년 현대캐피탈 감독에 오른 뒤 처음으로 챔프전 진출에 실패한 김호철 감독은 시즌 뒤 총감독에 추대되며 사실상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김호철 감독이 현대캐피탈을 떠난 이후 삼성화재 라이벌 자리는 대한항공이 이어받는다. 현대캐피탈은 김호철 감독 후임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하종화를 감독으로 선임했으나 2011~2012, 2012~2013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대한항공에 패해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다.


3시즌 연속 챔프전 진출이 좌절된 현대캐피탈은 김호철 감독에게 다시 한 번 S.O.S를 요청한다. 두 시즌 만에 다시 현대캐피탈에 복귀한 김 감독은 ‘세계 3대 아포짓 스파이커’라 불리던 아가메즈와 토종 에이스 문성민 등을 이끌고 정규리그 2위에 오른 뒤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다.


결과적으로 신치용 감독과 김호철 감독이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놓고 겨룬 2013~2014시즌 챔프전. 1차전에서 아가메즈가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으면서 현대캐피탈에 암운이 드리웠으나 문성민과 송준호를 중심으로 한 국내 선수들이 다양한 공격루트를 활용해 삼성화재 코트를 폭격하며 3-0 완승을 거뒀다.


2차전도 아가메즈를 선발 명단에서 뺀 현대캐피탈은 1세트를 25-19로 잡으며 기세를 올렸다. 슬슬 현대캐피탈에게 우승 기운이 기울 무렵. 신치용 감독과 삼성화재는 ‘우승 DNA’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2세트를 듀스접전 끝에 35-33으로 따낸 뒤 내리 여덟 세트를 모두 이겨버렸다. 즉 4세트를 먼저 내주며 1패를 안았고, 9세트를 연이어 따내며 3승을 챙긴 셈이다. 결국 3승1패로 신치용 감독은 김호철 감독과 마지막 챔프전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7연패에 성공했다.


V-리그 출범부터 10년을 이어온 신치용-김호철의 라이벌 관계는 2014~2015시즌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김호철 감독은 외국인 선수 부진 등 악재가 겹치며 5위로 V-리그 역사상 첫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다.


삼성화재는 정규리그 우승을 거뒀지만, 신치용 감독은 제자이자 ‘삼성화재 왕조’ 개국공신인 김세진 감독이 이끄는 OK저축은행에 챔프전에서 3전 전패로 패퇴하고 만다. 시즌 뒤 현대캐피탈 지휘봉은 사상 최초로 현역에서 사령탑으로 직행한 최태웅 감독에게 넘겨졌다. 신치용 감독도 삼성화재 배구단 단장으로 승진하며 지도자 생활을 마친다. 그 자리는 신치용 감독을 10년동안 모신 임도헌 수석코치에게 맡겨졌다.


V-리그 10년을 지배한 신치용-김호철. 두 동갑내기 배구 커리어는 묘하게 엇갈렸다. 선수 시절엔 김호철 감독이 압승이었다면, 지도자로서는 신치용 감독이 압승이었다. 라이벌인 두 사람은 본인들은 부정할지 몰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했고, V-리그 역사를 이끌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 뒤를 이은 임도헌 감독과 최태웅 감독은 묘하게 엇갈린 새로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냈다.


‘현대맨’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 vs ‘삼성맨’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신치용-김호철 체제를 거친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은 임도헌-최태웅 체재로 바뀌었다. 흥미로운 것은 임도헌 감독은 현역 시절 현대자동차서비스 주포로서 삼성화재에 막혀 번번이 준우승에 그쳤던 선수였다면, 최태웅 감독은 ‘삼성화재 왕조’에서 주전 세터로 활약하며 현대자동차서비스-현대캐피탈을 무너뜨렸던 주인공이란 사실이다.


‘현대 맨’이 삼성화재 감독을 맡게 되고, ‘삼성 맨’이 현대캐피탈 사령탑에 오르게 된 배경에는 두 감독이 모두 친정 팀과 다소 섭섭함을 느낄 수 있는 이별 사연이 있다.


KakaoTalk_Photo_2016-10-27-20-03-53_64.jpg1993년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서비스에 입단한 임도헌 감독은 장사 같은 힘을 앞세운 호쾌한 스파이크로 실업배구 데뷔와 동시에 스타 반열에 오른다. 1994~1995년 슈퍼리그 2연패를 이끌었고, MVP에도 선정됐다. 그러나 군복무를 마친 뒤 무릎 수술을 받으며 서서히 주전에서 밀려나게 됐고, 2002년 12월 현대캐피탈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자의반 타의반’ 은퇴를 하게 됐다.


은퇴 이후 2003년 캐나다로 건너가 1년간 지도자 연수를 받은 임도헌 감독은 대표팀 코치를 거쳐 2006년부터 삼성화재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이는 1989년 세계청소년대회 당시 코치와 선수로 처음 만난 신치용 감독과 인연이 계기가 됐다. 임도헌 감독이 성균관대에 입학한 것도 신치용 감독 추천 덕분이었다. 대학 시절 안면 마비로 고생하던 임도헌 감독을 위해 약을 구해준 것도 신치용 단장이었다. 10년간 신치용 단장을 감독으로 보좌한 임도헌 감독은 2015년 5월 제 2대 삼성화재 사령탑에 올랐다.



1999년 한양대를 졸업하고 삼성화재에 입단한 최태웅 감독은 삼성화재를 숱한 우승으로 이끌었고,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대표 주전세터로 활약하며 김호철-신영철로 이어지는 한국 세터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삼성화재가 현대캐피탈에서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박철우를 영입하면서 그에 따른 보상선수로 현대캐피탈이 최태웅을 지명했다. 이후 림프암이 발병해 독한 항암 치료를 이겨내면서 선수단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낸 최태웅 감독은 2014~2015시즌을 마치자 김호철 감독 후임으로 사령탑에 올랐다. V-리그 역사상 현역 선수가 사령탑으로 직행한 것은 최 감독이 유일하다.


161021_현대캐피탈_최태웅_감독_06.jpg


우여곡절 끝에 사령탑에 오른 두 감독은 2015~2016시즌에서 행보가 엇갈렸다. 최태웅 감독은 그간 한국배구에서 잊혀졌던 ‘스피드배구’ 도입을 주창하며 팀 체질개선에 성공했다. 오랜 기간 현대캐피탈 주전 세터 역할을 했던 권영민을 KB손해보험에 내주고 노재욱을 받아들여 주전 세터로 키워내며 리빌딩 작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후반기 18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V-리그 단일시즌 역대 최다연승 신기록을 작성했다. 아울러 2008~2009시즌 이후 처음으로 현대캐피탈에 정규리그 우승을 안겼다. 비록 OK저축은행과의 챔프전에서는 1승 3패로 밀리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지난 시즌 V-리그에서 가장 화제를 일으킨 인물은 단연 최태웅 감독이었다.



이에 견줘 임도헌 감독 사령탑 데뷔 시즌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비시즌 동안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던 레오를 내치고 대신 괴르기 그로저(독일)를 영입한 삼성화재는 정규리그 3위에 그쳤다. 플레이오프에서도 OK저축은행에 2전 2패로 물러나며 V-리그 사상 처음으로 챔프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보다 좋은 성적을 올린 시즌이었다.


천적 관계에 가까운 역대 상대 전적
지난 시즌은 현대캐피탈에겐 새 역사가 쓰여진 해이다. 바로 두 팀간 정규리그 맞대결에서 현대캐피탈이 5승 1패로 압도적 우위를 보인 것이다. ‘그게 무슨 새 역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현대캐피탈은 2014~2015시즌까지 정규리그에서 삼성화재를 상대로 5할 이상 승률을 거둔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005시즌 2승 2패, 2006~2007시즌 3승 3패를 제외하면 현대캐피탈은 매 시즌 삼성화재에 절대 열세를 보여 왔다.



V-리그 정규리그에서 두 팀간 역대 전적은 46승 26패로 삼성화재의 절대 우위다. 맞대결 결과만 보면 라이벌보다는 일방적인 ‘천적관계’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은 어떻게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라이벌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 그것은 1997년 슈퍼리그 참가 이후 19년간 정상을 지켜온 삼성화재가 2014~2015시즌 OK저축은행에 패하기 전까지 삼성화재에 패배를 안긴 팀이 유일하게 현대캐피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삼성화재가 1997년 슈퍼리그부터 2014~2015 V-리그까지 19번 챔프전에 올랐는데, 그중 13번이나 현대캐피탈(전신 현대자동차서비스 포함)이 대결 상대였다. 그 결과는? 알다시피 2번(2005~2006, 2006~2007시즌)을 빼고는 삼성화재가 11번을 이겼다.



즉, 2010~2011시즌 대한항공 정규리그 우승과 최근 OK저축은행 출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배구는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간 대결구도로 전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팀만 이기면 우승’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다 보니 둘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는 라이벌이 될 수 있었단 얘기다.



비단 두 팀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만이 코트 위에서 전쟁을 펼쳤던 것은 아니다. 두 구단 프런트들과 팬들도 치열하게 싸웠다. 응원앰프 데시벨 크기도 견제하고, 앰프 전원을 몰래 뽑기도 했다. 급기야 홈팀 응원단이 원정팀 응원단 소리를 줄이기 위해 자신들 응원앰프 방향을 원정팀 응원단에게 향하게 하고, 응원막대, 현수막, 플래카드 등 갖가지 사소한 것들로 두 팀 프런트가 부딪혀 감정이 격해져 고성이 오가고 물리적인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KOVO에는 응원단에 대한 규칙이 명문화 되어있지 않았는데, 두 팀간 치열한 응원전과 상호 견제가 규정명문화에 일조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양 팀 구단 관계자들도 “유독 맞대결만 되면 원정 응원을 자청하는 서포터즈가 늘어났다”라고 말할 정도다. 두 팀간 맞대결이 펼쳐지는 날 대전 충무체육관과 천안 유관순체육관은 전운이 감도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161021_삼성화재_유광우_08__.jpg이제는 상호 협력과 공생 시대로
20년 가까이 ‘하늘 아래 두 태양은 없다’는 말을 보여주듯 치열하게 싸워온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라이벌 관계는 이제 상호 협력과 공생이란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두 팀 사무국은 머리를 맞대고 공동 마케팅 등 라이벌전 ‘붐업’에 대한 논의를 거쳤다. 여기에 KOVO까지 합세해 함께 머리를 맞댄 결과 탄생한 것이 ‘V-클래식 매치’다.



KOVO 관계자는 “K-리그의 슈퍼매치(FC서울-수원삼성)처럼 이슈가 될 수 있는 공식 라이벌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마침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두 구단간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예전 같은 분위기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 더욱 흥미롭다”라고 전했다.



극적으로 손을 맞잡고 함께 일을 도모한 두 구단은 지난 10월 21일 2016~2017시즌 첫 맞대결을 앞두고 20일 이례적으로 공동명의로 된 보도 자료를 발송했다. 두 팀은 “치어리더 합동공연을 비롯해 공동마케팅을 펼치고, 원정 관중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등 라이벌전 품격을 높이겠다”라고 약속했다.



공격수를 두루 사용하는 ‘스피드배구’ 현대캐피탈과 특유 조직력을 앞세운 ‘삼성화재식 시스템 배구’가 지난 10월 21일 올 시즌 첫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풀세트 접전 끝에 현대캐피탈이 3-2로 승리했다.



현대캐피탈이 문성민(18점), 톤(18점), 최민호(17점), 신영석(12점) 등 주전들의 고른 공격배분으로 먼저 두 세트를 따내자 삼성화재는 이날 무려 51점을 퍼부은 외국인 선수 타이스를 앞세워 3, 4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풀세트로 끌고 갔다. 승부를 가른 5세트에는 최태웅 감독이 올 시즌 야심 차게 준비한 포지션 파괴가 빛을 발했다. 최민호가 아포짓스파이커로 변신해 후위공격을 성공시키고, 신영석은 윙스파이커로서 퀵오픈 공격까지 선보이며 그간 준비한 모든 수를 볼 수 있는 명승부였다.



글/ 남정훈 세계일보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KOVO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