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형 윙스파이커 … 반쪽짜리 선수인가, 기본기 탄탄한 보물인가

이정수 스포츠서울 / 기사승인 : 2016-12-28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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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V-리그에는 ‘수비형 레프트’라는 말이 통용된다. 공격수에게 ‘수비형’이라는 수식어를 다는 것이 어색한 것이 사실이지만 국내 프로배구에서는 어느새 익숙한 표현이 됐다. 수비형 윙스파이커는 본래 역할인 공격보다 수비를 잘하는 반쪽짜리 선수인가, 아니면 기본기를 탄탄히 잘 갖춘 귀한 공격 자원인가. 궁금증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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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형 윙스파이커가 뭐지?
코트에 나서는 6명 선수 가운데 윙스파이커로 분류되는 포지션은 전위와 후위에 한 명씩, 총 2명이다. 공격은 윙스파이커들과 아포짓 스파이커, 중앙속공수가 맡는다. 그런데 전위와 후위에 한 명씩이 배치된 윙스파이커 포지션 경우 후위에 있는 윙스파이커는 리베로와 더불어 서브 리셉션과 디그 등 수비에 도움을 줘야 한다. 수비형 윙스파이커는 그 중에서도 수비에 도움을 주는 역할에 무게가 조금 더 실린 공격수다. 윙스파이커 2명 가운데 수비력이 상대적으로 나은 선수가 공격에 참여하는 빈도를 줄이는 대신 수비에 가담하는 비중을 높이는 개념이다. 그렇다고 수비형 윙스파이커가 공격을 전혀 하지 않고 수비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중앙 후위공격을 비롯해 팀 공격상황에서 득점루트로 활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수비형’이라는 꼬리표가 달렸어도 엄연히 공격수다.



수비형 윙스파이커는 왜 생겨난 거지?
전문가들은 “예전부터 레프트(윙스파이커)는 전부 수비를 했다”라고 입을 모은다. 수비형 윙스파이커는 편의상 표현일 뿐 원래부터 존재했거나 혹은 널리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



수비형 윙스파이커가 담당해야 하는 수비를 보다 구제적으로 표현하면 서브 리셉션으로 볼 수 있다. 상대 공격을 수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선수들이 함께 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특히 윙스파이커가 리베로 혼자 막아내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을 함께 메워주며 리셉션을 도와야 한다.



서브권을 얻을 때마다 시계방향으로 자리가 한 칸씩 이동하는 기본 규칙을 고려하면 윙스파이커가 서브 리셉션에서 해야 할 역할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세터는 리셉션된 공을 두 번째로 터치해 공격으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첫 번째 터치에 해당하는 리셉션을 하지 않아야 한다. 센터는 신장이 커 중심을 낮춰 수비하는데 약점이 있고, 아포짓 스파이커는 세터의 패스를 받아 공격을 해야 하므로 리셉션을 자제하는 것이 유리하다. 리베로와 함께 서있지 않는 한 서브 리셉션은 윙스파이커가 주도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나온다.



이도희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우스개 소리로 ‘레프트(윙스파이커) 선수는 연봉을 더 줘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라며 “좋은 공은 라이트(아포짓 스파이커)나 센터(중앙속공수)에게 가고, 세터가 정확하게 세트플레이를 하기 어려운 공은 레프트로 간다. 수비하고 블로킹하고 공격도 해야 하는 레프트가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높다”라고 지적했다.



윙스파이커는 공격수이기 때문에 리셉션에 가담한 후 곧바로 공격을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공의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달리기도 힘들 뿐 아니라 공격을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한 점프도 해야 한다.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든 역할이다. 그런 이유로 수비에 더 비중을 두는 선수와 공격에 더 치중하는 선수로 역할을 분류하면서 수비형 윙스파이커가 생긴 것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다. 같은 윙스파이커지만 역할 비중에 따라 편의상 구분해 부른 것이 굳어졌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삼성화재 류윤식, OK저축은행 송희채, IBK기업은행 채선아 등은 윙스파이커로 분류된 선수들임에도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서브 리셉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다.



수비형 윙스파이커의 등장은 공수실력을 겸비한 선수들이 많지 않은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두 명 윙스파이커가 모두 수비력을 겸비했다면 걱정할 일이 없지만 그런 선수가 흔치 않다. 다소 신장이 작아도 수비력이 좋은 선수를 윙스파이커로 기용해 리셉션 등 수비능력을 보충하는 역할을 맡기고, 상대적으로 키가 크고 득점을 낼 수 있는 선수에게 공격을 일임하면서 ‘수비형’ 개념이 생겼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실상 윙스파이커 한 명이 한꺼번에 해내야 할 공수 역할을 두 명이 반씩 나눠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상호보완적인 측면에 집중한다면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선수 두 명으로 한 사람 몫 역할을 하는 셈이라 효율성은 떨어진다는 부정적 측면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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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그리 중요했나, 강조되는 이유는 뭘까
언제부터 ‘수비형’이 강조되고 중요해졌는지는 특정하기 어렵지만 외국인 선수들이 공격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V-리그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많다. 외국인 선수들이 스파이크 한 방을 득점으로 마무리 지을 확률이 높은 만큼 리셉션과 공격을 이어서 해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을 줄여 공격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내 선수들이, 공격을 해야 하는 공격수까지도 외국인 선수 몫의 리셉션 부담을 나눠가진다. 리베로를 수비형 윙스파이커로 기용하는 식의 변칙적인 선수운용이 이런 견해를 강하게 뒷받침한다. 오랜 시간 성적으로 효용가치를 입증해온 V-리그식 ‘몰빵배구’가 윙스파이커의 공격력을 포기하더라도 수비에 집중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유소년 선수들 교육환경, 선수수급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도 수비형 윙스파이커가 중요해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지도자들과 배구인들은 서브 리셉션을 ‘기본기’로 표현한다. 배구를 배우고 공에 익숙해질 때 익혀야 하는 기본이 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프로에 진출한 선수들이 ‘기본기’인 서브 리셉션, 수비력 때문에 고생을 하는 이유는 유소년 시절부터 갈고 닦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세호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선수자원이 부족한 것과 연관이 있다. 어릴 적부터 기본기를 갖춰야 하는데 선수들이 공격을 먼저 배운다. 사실 수비가 공격에 비해 재미있지 않다. 재미없는 것을 하기 싫어하는 선수들 마음가짐, 선수들이 적으니 계속 배구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재미있는 것부터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고충 등이 숨어있다. 선수들이 프로선수가 된 후에야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브 리셉션 같은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공수를 겸비한 선수들이 줄어드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이도희 위원도 “최근 여고부 경기를 보면 외국인 선수에게 볼을 몰아주는 프로와 다르지 않게, 에이스 한 명이 공격을 전담한다. 이런 현상은 주니어 선수들의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릴 때부터 각자 포지션에서 다양한 방식의 팀플레이를 경험해보고, 반복훈련으로 테크닉을 익혀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프로에 진출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 팀에서 강력한 아포짓 스파이커로 명성을 날렸던 선수들도 프로에 진출하게 되면 외국인 선수 존재로 인해 공격전담 선수로 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격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윙스파이커 위치에 배치하자면 어릴 적부터 공격만 해온 선수입장에서는 리셉션도 해내야 하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기가 어렵고, 팀 입장에서는 부족한 수비력이 불안해진다. 뒤늦게 훈련을 해봐도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바라는 만큼 성과를 얻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현재 V-리그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
수비형 윙스파이커가 관심을 얻는 것은 그만큼 수비력과 공격력을 한꺼번에 갖춘 선수가 드물다는 의미다.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려운 흐름이다. 하지만 수비형 윙스파이커가 경기 흐름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에 V-리그에서 그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체력적인 부담을 높이기 위해 상대 서브가 주요 윙스파이커에게 몰리는 경향이 있다. 수비력이 좋은 선수가 이를 도와주면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좋은 윙스파이커가 체력을 아끼면서 점프력과 파괴력을 유지할 수 있다. 윙스파이커가 넓은 범위를 수비해주면서 안정감 있게 공을 받아내면 세터의 세트플레이도 정교해질 수 있다. 정교한 세트플레이는 아포짓 스파이커나 중앙속공수를 활용해 빠르고 위력적인 방식으로 득점할 가능성을 그만큼 높인다.



공격력과 수비력을 겸비한 선수가 귀한 프로배구 V-리그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수비형 윙스파이커 역할은 경기 승패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V-리그에는 외국인 선수들뿐 아니라 강한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들이 많다. 스파이크 서브에 더해 공 흔들림을 이용해 받아내기 까다롭게 시도되는 플랫 서브를 겸비한 선수들도 많다. 세터의 세트플레이 정확성을 높이려면 서브 리셉션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수비부담이 큰 윙스파이커의 역할이 중요하다. 각 팀 감독들이 “서브와 리셉션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수비형 윙스파이커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이 월등했던 때는 리셉션이 흔들리거나 세트의 질이 좋지 않아도 외국인 선수가 가진 압도적인 높이와 힘으로 득점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트라이아웃 제도 시행 이후 외국인 선수들의 실력이 하향평준화 되면서 세트플레이 정확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수비형 윙스파이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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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형 윙스파이커의 미래는 달라질까
현재까지는 수비형 윙스파이커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점차 이런 구분은 의미를 잃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선 최근 세계적인 배구 흐름은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참여하면서 속도를 높이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다. 국내 V-리그에서도 흔히 ‘스피드 배구’나 ‘토털 배구’ 등으로 표현되는 이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빠른 배구를 하기 위해서는 공격수들 전원의 공격력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다양한 공격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윙스파이커 한 명을 사실상 수비전담 선수로 고정시킬 경우 공격루트가 하나 줄어들게 된다. 모든 공격루트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모든 선수들이 서브 리셉션 등 수비에 참여해야 하고, 공격으로 이어지는 볼배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V-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이 과거에 비해 하향평준화 되면서 역할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점도 V-리그 특수성인 수비형 윙스파이커 개념이 모호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해준다.



지난 시즌 여자부 현대건설을 비롯해 최근 외국인 선수로 공격을 전담하는 아포짓 스파이커가 아닌 리셉션 부담을 나눠 갖는 윙스파이커를 선택하는 팀들이 늘었다. ‘해결사’ 역할을 맡았던 외국인 선수들의 공격력이 떨어진 만큼 득점보다는 부족한 수비력을 채워주는데 기대를 거는 흐름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공격과 수비실력을 겸비한 국내 선수가 드물다면 그 역할을 외국인 선수에게 맡기고 국내선수가 가진 공격력을 살리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셈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대형 공격수가 어느 순간 마법처럼 나타나기 어려운 환경이고, 트라이아웃을 통한 외국인 선수 선발이 이어지는 동안은 이런 전략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 이정수 스포츠서울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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