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유니폼을 벗은 아마추어 선수가 있다. 그는 배구공 대신 노트북을 손에 들었다. 코트 가장 바깥쪽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 경기대 전력분석관 박성수(21)다.
원래는 배구선수였는데요, 언제 어떻게 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때 배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아버지께 말씀 드렸더니 절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대신 기말고사 전교 1등을 하면 배구를 시켜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해서 초등학교 3~6학년 때 내내 전교 1등이었어요. 아버지도 처음엔 제가 전과목 100점을 맞아오니 감동 받으신 눈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결국 6학년 끝날 무렵 운동을 시작하게 됐죠.
아버지가 신협상무 박삼용 감독이잖아요. 배구를 하고 싶었던 데에는 아버지 영향이 컸겠죠?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뿐 아니라 주위 삼촌들이 다 배구를 했으니까 자연스레 접했어요. 어른들이 너도 아빠 따라서 나중에 배구하라고 농담을 많이 하셨죠. 그때 저도 배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선수생활은 언제까지 한 거예요?
저는 미들 블로커였는데 송림고 시절 마지막 경기 직전에 어깨를 다쳤어요. 재활을 두 달 정도 하다가 경기대 배구부 신입생으로 들어갔는데 어깨가 다 나았는지 안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훈련에 참여했는데 일주일 만에 부상이 재발했어요. ‘이제 배구를 그만해야 되는구나’ 싶었죠.
만약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면 계속 배구를 했겠네요.
조금 더 하긴 했겠죠. 사실 그전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배구인들이 대부분 아버지 동료이거나 선후배니까 다 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배구를 조금만 못 하면 ‘쟤 박삼용 아들 아냐?’ 이런 말을 들을 것 같아서요. 어렸을 때부터 그게 계속 부담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배구가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아버지는 제가 스트레스 받을 까봐 한 번도 제 앞에서 배구 얘기를 안 하셨어요. 그냥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등 일상적인 대화만 했어요. 근데 제가 크고 나니 어머니께서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제가 힘들어 하는 거 아버지도 다 알고 계셨다고. 그래서 배구에 관한 이야기는 안 하신 거라고요. 아마 저만큼 아버지도 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겠죠. 죄송하기도 하고 감동이었어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이후 전력분석관을 하게 된 과정도 궁금해요.
제가 운동을 그만둘 무렵 팀에서 전력분석관을 쓰려고 생각 중이었어요. 원래 다른 형이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형이 다시 배구를 한다고 해서 때마침 분석관 자리가 공석이었거든요. 결국 저한테 기회가 와서 시작하게 됐죠. 진짜 운이 좋았어요.
대학리그 최초 전력분석관이잖아요. 여기저기서 조언을 구하는 연락이 많이 온다고 들었어요. 자부심도 느낄 것 같은데요?
SNS를 통해 문의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전력분석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고요. 그중에는 고등학생 선수도 있고 배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도 있어요. 자부심보다는 앞으로 전력분석관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대학리그 안에서도 전력분석관이 늘어나는 추세예요. 이 직업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서 좋아요. 그래도 제가 제일 먼저 시작해서 이런 길도 있다는 걸 알리게 된 것 같아 뿌듯하긴 하네요. 반면에 긴장도 돼요. 이제 분석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니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해야죠. 더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아무래도 일반인보다는 배구 경력이 있는 사람이 전력분석관을 하는 데 더 유리할 듯해요.
일반인이라도 경기를 보는 시야가 좋으면 괜찮아요. 그래도 배구를 해본 경험이 있고 없고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공격수가 직선 방향으로 공을 때렸어요. 그런데 그게 상대 블로커 손에 맞고 코트 대각선 쪽에 떨어져요. 그럼 스트레이트 공격인데 크로스 방향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어요. 분석이 엉뚱하게 되는 거죠. 경기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무척 많아요. 저도 그랬고요. 또, 코트 안에서 선수들만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 것까지 이해하려면 배구를 해봤던 사람이 비교적 수월하긴 하죠.
전력분석은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하잖아요. 처음에 어떻게 배워서 준비했는지 들려주세요.
이 직업은 각자가 가진 절대적인 노하우로 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타이핑 치는 것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아요.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똑같지만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는 분석관마다 다 달라요. 기록 하나를 놓고도 누구는 데이터A를 뽑고, 다른 누군가는 데이터B를 뽑아요. 두 개 다 도출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둘 다 놓치는 사람도 있죠. 결국 그 프로그램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응용하는 건 개인 몫이에요. 공부가 많이 필요한 직업이죠.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려면 연습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경기대에는 배구부가 있잖아요. 리그나 대회 때 하는데 그래도 부족하니까 국내외 배구 영상을 구해서 연습해봤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 2~3달 동안은 매일 프로그램과 싸우느라 하루에 3시간씩 잤어요.
실력이 확실히 늘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서요.
원래 한국은 성인 대표팀에만 전력분석관이 있었어요. 다른 나라는 주니어 대회 등에도 분석관이 오거든요. 그런데 제가 전력분석을 시작한 해부터 우리나라도 아마추어 대회에 분석관을 보내게 된 거예요. 2014년에 아시아 유스 남자선수권, 아시아청소년 남자선수권대회 등을 다녀왔어요. 당장 국제대회에 투입돼야 한다고 생각하니 연습을 안 하면 불안하더라고요. 대학리그는 경기마다 간격이 길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할 시간이 넉넉해요. 하지만 국제대회에서는 매일 경기를 하는데 상대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모든 경기를 다 보고 밤새 데이터를 뽑아야 해요. 하루에 12시간씩 경기장에 있다가 숙소에 들어와 새벽 4~5시까지 정리해놔야 하죠. 열흘 동안 고작 24시간 잤을 거예요. 힘들긴 한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확실히 실전은 다르더라고요.
경기대에는 전력분석관이 있다는 걸 모든 팀이 알잖아요. 전략이 통하지 않는 등 시행착오도 겪었겠죠?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어디였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나올 때가 종종 있었어요. 후반으로 갈수록 서로 파악이 다 돼버리니까요. 다른 팀들이 주 공격수가 많이 때리는 코스를 바꾸는 등 역이용해서 준비해오더라고요. 인하대 경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최천식 감독께서 진짜 영리하세요. 수가 많으신데 중요한 건 인하대는 모든 선수들이 다양한 전략을 잘 소화한다는 거예요. 이런 팀은 준비를 훨씬 많이 해야 해요. 경기 중에도 인이어 이어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독님과 소통하며 작전을 바꿔야 하거든요. 얘기할 타이밍은 랠리 하나가 끝나고 다음 선수가 서브 넣기 전 8초뿐이니까요. 주로 작전타임 때 얘기를 많이 하죠. 상대 선수가 공격을 어느 쪽으로 때리는지, 우리 팀은 뭐가 안 되고 누가 무슨 범실이 많은지 등이요.
대학뿐 아니라 V-리그에서도 전력분석 하는 모습을 봤어요. 프로와 아마추어는 무엇이 다르던가요?
선수와 마찬가지로 전력분석관도 프로는 차원이 달라요. 분석하면서 동시에 배워요. 프로팀 분석관 형들이 하는 걸 보면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요? 여기서 작전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게 정말 많아요. 경기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면 그날그날 봤던 걸 메모해두기도 하고 혼자 데이터를 만들어봐요.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2014년과 비교하면 본인이 많이 성장했다는 걸 느낄 것 같아요.
말도 못 하죠. 미팅 내용 자체가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제가 1학년이고 다 형들이라 말도 제대로 못 했어요. 제가 작전을 세우고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됐는데 선수들은 다 선배였으니까요. 1학년짜리가 감히 어디로 서브를 넣고 공격을 어떻게 하라고 말하기 힘들었죠. 근데 점점 내공이 쌓이다 보니 형들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더라고요. 팀에서 ‘전력분석관 박성수’에 대한 신뢰가 생겼어요. 뽑을 수 있는 데이터 양도 몇 십 배는 차이 나죠. 지금은 훨씬 효과적으로 하게 됐어요. 그래도 프로 형들과는 비교도 안 돼요. 한참 멀었죠.
선수였다가 코칭스태프가 된 거네요. 고충이 많았겠어요.
저는 선수들과 나이대가 비슷하지만 위치는 스태프잖아요. 프로 팀은 중간에 매니저, 트레이너, 주무 등이 있는데 대학에서는 저 혼자만 중간에 껴있어요. 감독, 코치가 주문하고 싶은 것과 선수들이 바라는 걸 동시에 듣죠. 중간에서 소통창구 역할을 해야 해요. 이중 스파이 같아요. 요새는 3학년이 되다 보니 그래도 말하기 수월해져서 다행이에요.
반대로 전력분석관으로서 보람찰 때도 있었을 텐데요.
많죠. 제가 뽑은 데이터가 정확하게 일치해서 작전이 통했을 때 보람을 느껴요. ‘내가 이런 것도 볼 줄 아나?’ 싶을 때도 가끔 있죠. 선수들이 작전 잘 수행해주면 너무 좋아요. 저는 경기 끝나면 선수들을 다 안아줘요. 고맙다고요. 선수들이 경기 이기면 다들 ‘성수 덕분에 이겼다’라는 얘기를 해요. 그때 제일 행복해요.
그래도 전력분석관은 외로운 일 같아요. 이 길을 택한 걸 후회하진 않나요?
항상 감사함뿐이에요. 제 나이 때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걸 하고 있으니까요. 모든 게 재미있고 감사해요. 힘든 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 생각 안 하려 해요. 학업과 일을 병행하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더라고요. 선수들도 챙겨야 하고요. 그래도 저는 이 일이 마냥 좋아요.
최종 목표는 역시 프로 전력분석관이 되는 거겠죠?
시작과 동시에 프로 전력분석관을 목표로 잡았죠. 제가 실력 면에서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더 공부해야 해요. 겉으로 보기엔 분석이 다 똑같아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프로 형들이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세계예요. 제가 지금 하는 건 그냥 기본으로 깔고 가는 수준이죠. 프로 팀 너무 가고 싶어요. 형들은 어떻게 분석하고 전략을 짜는지 배우고 싶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프로 팀에 분석관 자리가 나야 하고, 시기도 맞아야 하죠. 실력도 갖춰야 하고요. 프로 분석관이 된다는 건 정말 ‘꿈’이에요.
그래도 아마추어 분석관 중에서는 가장 프로에 근접한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쉽진 않겠지만 앞으로 초, 중, 고등학교에도 전력분석관 시스템이 도입됐으면 해요. 제가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배구에서 전력분석이 정말 중요해요.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 받고 운영됐으면 해요.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전력분석을 시작하시길 바라요. 저도 열심히 해서 목표를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글/ 최원영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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