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터뷰] 신 스틸러의 짙은 향기, 곽승석

정고은 / 기사승인 : 2017-03-06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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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중심은 언제나 주인공 차지다. 하지만 이 때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 하나.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그 몫을 해주는 조연이 있기에 스타도 더 돋보이는 법. 여기 그런 선수가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믿음직스러운. 스스로도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환상은 없다”라고 말하는 곽승석. 그에게서 ‘신 스틸러’의 짙은 향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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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팀에 남은 이유


곽승석에게 올 시즌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럴 것이 FA계약 체결 이후 맞이하는 첫 시즌이기도 했지만 지난 시즌 부침이 많았던 까닭이다. 무섭게 성장한 후배 정지석에게 밀리며 본인 처지가 크게 줄어 들고 있음을 확인해야 했다. 기록으로 살펴보아도 하락세는 뚜렷했다. 64득점에 머물렀다. 데뷔 후 한 시즌 최소 득점. 스스로도 지난 시즌은 최악이라고 털어놓는다. “프로 데뷔 이후 지난해처럼 경기를 못 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마인드 컨트롤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잘 몰랐고요. 힘들었죠. 더군다나 FA시즌인데 경기를 못 뛰고 있으니까 속으로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그의 입을 통해 당시 솔직한 심정을 들어봤다.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지만 경기를 못 뛰면 선수로서 능력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코트에 들어가더라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FA시즌이잖아요. 선수는 몸값으로 가치를 평가 받는데 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것이 제일 속상했죠.”



그렇게 아쉬움 속에 시즌을 마감한 곽승석. 많은 이들이 그의 행선지를 주목했다. 자유 신분을 얻은 곽승석이 대한항공을 떠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곽승석은 5000만 원 오른 연봉 2억 5000만 원에 사인하며 팀 잔류를 선언했다.



시장에 나가 평가 받고 싶지는 않았을까? “솔직히 한 번 나가보고도 싶었어요. 그런데 팀이랑 얘기를 나누면서 저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저도 6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고요. 그 정을 무시 못 하겠더군요(웃음). 돈이라는 가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팀에서도 저에 대해 충분히 대우 해줬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계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또 하나는 이 팀에서 우승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유니폼에 별 한 번 달아봤으면 좋겠다’라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정규리그 우승은 해봤는데 아직 챔피언 우승이 없잖아요. 이 팀에서 우승을 꼭 해보고 싶어요.” 곽승석의 말이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소 이른 질문을 던졌다. “올 시즌은 곽승석 선수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러자 그는 “팀 성적도 좋고 저나 지석이나 다 잘하고 있어서 좋아요. 제가 반등했는지 아닌지 여부는 관계자 분들이나 팬들이 평가를 하실 테지만 저는 팀 컬러에 맞게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찬란한 부활을 알리다


기록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만큼 화려하게 부활했는지. 2월 13일 기준 곽승석은 27경기 87세트에 나서 138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점유율도 3.5%에서 9.3%로 뛰어 올랐다. 곽승석은 “솔직히 올 시즌 개막전에 나서는데 ‘못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친 듯이 잘 해야겠다’도 아니었어요. 그저 ‘못 하면 안 되는데…’였어요. 그런데 그 한 경기더라고요. 다음 경기부터는 다른 경기들과 똑같았어요”라고 개막전 당시 심경을 밝혔다.



그에게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대한항공이 가진 강점은 역시나 두터운 선수층. 곽승석을 포함 김학민 신영수 정지석 등 윙스파이커 자원만 여럿이 포진해있다. 그에 따른 경쟁 심리는 없을까? 곽승석은 “속마음은 서로 모르지만(웃음) 그런 건 없어요”라고 웃었다. 이어 “저희 4명이 번갈아 기용되니 체력관리가 확실히 돼요. 그리고 누가 들어가도 기본은 하잖아요. 그게 저희 팀 강점이지 않나 싶어요. 설령 누가 못하더라도 다음 사람이 들어가서 잘해주면 팀으로서도 좋고요. 서로 얘기도 많이 나눠요. 공격은 (신)영수 형이나 (김)학민 형한테 조언을 구하고 리시브는 저나 (정)지석이가 형들한테 얘기를 해주고 있어요. 경쟁이라고 한다면 선의의 경쟁이죠. 상부상조하면 좋잖아요. 진심으로 다들 잘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곽승석 본인도 그렇지만 대한항공 팀 역시 절치부심했다. 박기원 감독을 영입하며 팀 체질개선을 꾀했다. 우선 리시브에 변화를 줬다. 포어암(forearm) 리시브에서 오버핸드 리시브로, 2인 리시브에서 3인 리시브 체제로 전환했다. “감독님은 팀에 좋은 세터가 있는 만큼 리시브를 70-80%정도만 해줘도 커버할 수 있다고 부담 없이 하면 더 잘될 거라고 얘기하셨어요. 확실히 3명이 리시브에 가담하니 제가 커버하는 범위가 줄어들어서 전보다 더 나은 것 같아요.”



하지만 무게감은 떨어졌다. 최부식이 은퇴하며 2년차 리베로 백광현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 박기원 감독은 “리베로는 어째 항상 데뷔전인 것 같다”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자 곽승석도 “부담감이 다르죠. 최부식 코치가 있을 때는 아무래도 연륜도 있고 노하우도 있어 부담이 덜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백)광현이는 이제 두 번째 시즌이에요. 본인 스스로도 많이 흔들려요. 저희도 도와주려고 해요. 그래도 광현이가 잘해주고 있어요. 버티고 있으니까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덧붙여 “긴장을 많이 하나 봐요. 지적을 많이 받으면 거기서 멘탈이 흔들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얘기도 많이 하면서 잡아주려고 해요”라며 후배를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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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망한다, 우승을


대한항공은 정상을 향해 고공 비행 중이다. 2위 현대캐피탈과 승점 차를 벌리며 정규리그 우승에 대한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는 것. 국가대표 급 선수들이 즐비한 대한항공이라면 그럴만하다고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간 보여준 대한항공 모습은 사실 그것과 달랐다. 지난 시즌 후반 7연패에 빠지며 자멸, 간신히 준플레이오프에 발을 담갔지만 그뿐이었다. 최종 순위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올 시즌에도 다름없이 상위권 한 자리는 대한항공이 차지하고 있다. 아니, 지난 1월 12일 선두 탈환 이후 굳건히 1위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시즌과 분명 달라진 점. 그 원동력이 궁금했다. 그러자 곽승석은 “크게 변화된 건 없어요”라고 전했다. 이어 “저희가 항상 초반에는 잘나가다가 막판에는 뒷심부족으로 매번 순위가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번에 감독님도 바뀌면서 선수들이 우승을 해보겠다는 의지가 더 커졌어요. 선수들 마음가짐이 더 단단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아직 끝난 게 아니지만 매 경기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저희가 열망하는 우승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전, 비주전 할 것 없이 모두 다 잘해주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매 시즌 우승후보를 꼽는 질문에 대한항공 이름은 마치 정답인 듯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오히려 선수들에게 부담만 될 뿐이었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한선수는 “그 동안 우승 압박이 심했다.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니 흔들렸던 적도 많았다. 선수들과 우승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자칫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 조심한다. 순위에 대한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랬다. 곽승석 역시도 “매년 언론이든 다른 팀이든 저희를 우승후보로 꼽잖아요. 확실히 저희가 선수 층을 보면 좋기는 해요. 우승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요. 그런데 플레이오프 진출에만 머물고 마니 속상한 마음이 있었죠”라고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곽승석은 “이번에 기회가 왔으니까 이 기회를 잘 잡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대한항공은 그간 꾸준히 성적을 내왔지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늘 우승권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조심스레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저희가 부진에 빠졌을 때 치고 올라가는 힘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연패에 빠지고 순위도 떨어졌죠.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 주위에서 조직력이 모래알 같다고 하니, 진짜 ‘응집력이 부족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형들도 마찬가지로 자신감이 떨어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올 시즌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곽승석은 “솔직히 상대방이 잘한 것보다 저희가 못해서 진 경기도 많거든요. 자신감 있게 저희가 할 것들만 하면 계속 이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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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스포트라이트란


2010~2011시즌부터 프로 무대에 뛰어든 곽승석. 어느새 7번째 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그에게 지난 프로생활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그러자 곽승석은 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무난한 것 같아요. 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았고요. 굵고 길게 가는 것이 가장 좋지만(웃음) 짧고 굵은 것보다는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거든요. 무던하게 오래 배구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 말과는 달리 곽승석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프로배구 역사에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예로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리베로가 아닌 선수가 수비 1위를 차지한 건 곽승석이 처음이었다. 그는 2011~2012, 2012~2013시즌 수비상을 수상했다. “옛날에는 리베로에게 서브가 집중됐어요. 요새는 워낙 리베로들이 잘 받으니 공을 안 보내요. 윙스파이커가 받고 때리면 더 힘드니까 전략적으로 이런 시스템이 갖춰졌죠. 그러니 제가 공을 많이 받았어요.”



곽승석만의 수비 비결이 있을까? “경기에 계속 참가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지요. 성공률도 어느 정도 나왔고요(웃음). 지금 저희가 3인 리시브를 하잖아요. 그러면 분산이 되니까 순위가 올라가기 힘들어요. 아! 디그도 많이 해야 해요. 리시브랑 디그를 합친 게 수비잖아요. 리시브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디그를 못 하면 순위가 안 올라간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곽승석은 문득 “참 힘들어요”라는 말을 던졌다. 리시브를 받는 위치가 어렵다는 것. 그는 “제 포지션이 제일 처음 받는 자리잖아요. 제가 흔들리면 세트도 흔들리고 그러면 공격도 다 안 되잖아요. 공격은 못해도 이해를 하는데 리시브를 못 받으면 ‘저거도 못 받냐’ 이런 소리 많이 듣거든요. 욕을 제일 많이 먹죠. 못하면 독박, 잘하면 본전이죠. 잘해도 티가 잘 안 나요. 확실히 공격은 화려하니까 팬들도 좋아해요. 그런데 리시브는 아는 사람들만 힘든 걸 알아요”라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공격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공격을 못해서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스포트라이트요? 잘하니까 스포트라이트도 받는 거 아닐까요? 팀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있어야 팬들도 많이 오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에이스가 되어야지’,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야지’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 자리를 많이 안 해봐서 그런가(웃음) 제 포지션 상 묵묵히 임무를 하려고 할 뿐이에요.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환상은 없어요. 잘해서 한 번씩 인터뷰하면 좋은 거죠.”



공격에서 이름을 떨친 적도 물론 있었다. 2015년 3월 9일이었다. OK저축은행과 경기 종료 후 곽승석 기록지에는 블로킹 6개, 서브 3개, 후위 공격 3개가 적혀 있었다. 그렇다. 이날 곽승석은 생애 처음으로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했다. 본인 스스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라 손꼽았다. “영광이었죠. 한 번도 하기 힘든 기록이잖아요. 그리고 (김)학민이 형 이후로 국내선수로는 몇 년 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운이 좋았어요(웃음).”



이어 “한 번쯤은 더 해보고 싶은데 힘들어요. 후위 공격은 괜찮은데 서브가 되면 블로킹이 안 되고 블로킹 잡아놓고 서브가 안 될 때도 있어요. 그 세 개를 다 한다는 것이 힘들죠. 트리플크라운을 여러 번 하는 사람들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요”라고 덧붙였다.



내 인생의 동반자 배구 그리고 가족


초등학생 때 키가 커서 시작하게 된 운동. 하지만 배구는 이제 그의 동반자가 됐다. “원래 배구부가 없었는데 창단을 했어요. 그 때 저는 뒤에 설만큼 키가 컸어요.” 사실 중학생 때는 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런데 계속 해보자는 설득에 넘어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제대로 배구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중학교 입학할 때 그만 두려 했어요. 운동부가 없는 학교로 가려고 했는데 계속 해보라고 하셔서 결국 배구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했죠. 운동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제대로 했어요. 우승도 하고 성적이 나니까 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든 순간도 물론 있었다. “저는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주기적으로 왔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그 때마다 그를 붙잡은 건 바로 가족이었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그리고 한 가지 바로 ‘프로’라는 이름. “할 수 있는 게 배구 밖에 없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하면서 정점은 프로니까 그만둘 때 두더라도 프로는 되고 그만 하자라는 생각이 컸어요.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크게 하기 싫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 “대학교 때를 보더라도 운동만 하니 친구들이랑 교류가 많이 없었어요. 운동선수들끼리는 알아도 다른 친구들을 모르니까 그 부분은 좀 아쉬워요. 같이 놀지는 못하더라도 교류라도 있어야 친분도 쌓을 수 있을 텐데 그저 학교 졸업만 했죠.”



2015년 5월 10일. 그에게 배구가 아닌 새로운 동반자가 생겼다. 인생을 함께 할 친구를 얻은 것. 그리고 여기에 이제 둘이 아닌 셋이라는 미래를 그려보는 곽승석이다. “아내와 아기를 위해서라도 더 잘하고 열심히 해야죠. 두 어깨가 무거운 가장입니다. 책임감이 확실히 달라요. 제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잖아요. 다들 저를 믿고 바라보는 만큼 책임감이 어마어마해졌죠.” 2월 말 태어난 아기 이야기를 꺼내자 얼굴에는 벌써부터 딸바보의 웃음이 흘러 나왔다. “언제 10개월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여자 아이라 아내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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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2010년 9월 28일, 남자배구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던 날. 이날 곽승석 인생도 전환점을 맞았다. 경기대 4학년이던 그는 1라운드 4순위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고 데뷔시즌 34경기 114세트에 나서 179득점이라는 성적표를 남겼다.



신인상 후보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 표차로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곽승석은 “솔직히 개인 성적은 제가 훨씬 밀렸어요. 다만 팀 성적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어서 살짝 기대는 했죠. 한 번뿐인 상이잖아요”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위안이 있다면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는 것. 곽승석은 최고 시즌으로 2010~2011시즌을 꼽는다.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경기를 뛰었고 그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우승까지 했잖아요. 팀 우승했을 때가 최고 시즌이었죠.”



곽승석이 대한항공에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 팀에 오게 된 것이 인생 터닝포인트라고 했다. “솔직히 제가 다른 팀에 갔으면 이 정도도 못했을 거예요. 여기에서도 이 정도까지는 생각도 못했지만요(웃음). 사실 대한항공에 들어오고 나서도 처음부터 경기를 뛸 수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교체로 왔다 갔다 하면서 경험을 쌓을 줄 알았죠. 그런데 우연찮게 당시 대한항공 신영철 감독께서 기회를 주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이 팀에 와서 경기도 뛸 수 있었고 우승도 해봤고 또 대표팀에도 뽑혔어요. 이 모든 걸 대한항공에 와서 경험했기 때문에 정말 제일 큰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이번 대답만은 아니었다. 그와 이야기하는 내내 느껴졌던 건 팀에 대한 애정. 그에게 대한항공에 대한 애착이 커 보인다는 말을 꺼내자 “일단 저를 뽑아줘서 고마워요. 배구선수로서 제 가치를 알아봐주셨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경기도 뛸 수 있게 기회를 허락해주셨고요. 팀에서 저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기 때문에 저로서도 애착이 클 수밖에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을 그에게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불현듯 곽승석은 “박수 칠 때 떠났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전했다. 많은 선수들이 이야기하곤 한다. 정점을 찍었을 때 많은 박수와 환호 속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고 싶다고. 하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곽승석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정점을 찍었을 때 떠난다는 것이 참 쉽지 않거든요. 생각도 많이 날 거고 또 자신이 하던 일이 이건데 다시 처음부터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을 테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단한 것 같아요. 부럽기도 하고요. 떠밀리듯이 은퇴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은퇴한다는 것 말이에요. 알잖아요. 자기가 해보면 더 버틸 수 있는지 아니면 더 이상은 힘들겠는지. 저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은퇴 전 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그러자 곽승석은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얘기하면 전부터 서브 1등은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국내 선수 1등까지는 해 봤는데…안 되겠더라고요. 올스타전에서 1등 하는 건 어떠냐고요? 안 그래도 나가봤는데 (문)성민(현대캐피탈)이 형한테 밀렸어요(웃음).”



서브 1등은 꿈으로 남겨두겠다는 곽승석. 그저 배구를 오래 했으면 좋겠단다. 그는 특별한 목표를 세워 두지는 않았다. 상에 대한 욕심도 품지 않았다. 배구 하는 동안 다치지 않고 실력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오래 잘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면 상은 따라오지 않겠냐고 되묻던 그다.



마지막으로 곽승석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전부터 이런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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