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기자, 배구선수를 체험하다
겁 없이 도전한 KB손해보험 선수단 훈련 체험기
코트 위에서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즌이 끝난 뒤 잠깐 휴가를 마치고 벌써부터 훈련에 돌입한 선수들. 과연 프로 선수들이 일상으로 벌이는 훈련은 어떨까? 일반인이 하루 동안만이라도 함께 한다면? 이 발랄한 상상에 신입 기자가 더스파이크에 입사하자마자 겁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Prologue
187cm 키에 남부럽지 않은 덩치를 가진 나. 겉으로만 보면 운동과 친할 것 같지만 사실 군에 전역한 이후로 별다른 운동을 해본 적 없는 예비군 4년 차다. 지원서에 써낸 겁 없는 기획안이 덜컥 채택되면서 입사 4일 만에 험난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과연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까? 시즌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다음 시즌을 위해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KB손해보험 선수단과 함께 보낸 하루를 쫓아가보자.
AM 09:30 아침 인사, 몸 풀기 운동
미세먼지로 목이 따갑던 지난 4월 20일 아침.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KB손해보험 배구단 훈련장으로 긴장된 발걸음을 옮겼다. 곧 훈련이 시작된다는 구단 관계자 말에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들어섰다. 높은 천장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선수단 위용에 이미 기가 죽고 말았다. 평소 TV나 경기장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눈 앞에 서있는 선수들 실제 모습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수줍게 인사를 건넨 뒤, 본격적인 몸 풀기에 들어갔다. 오늘 기자와 함께 훈련해줄 파트너는 지난해 새로 들어온 루키 박민범 선수. 키는 기자보다 조금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과 살아있는 눈빛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루 동안 기자를 맡아 사수 역할을 해줄 박민범과 함께 코트 위에서 분주한 몸 풀기가 시작되었다. 몸 풀기 운동은 할만 했다. 스트레칭과 워밍 업으로 쉬울 수밖에 없는데, 의외로 따라갈 만한 몸 풀기 운동에서 기자는 살짝 방심하고 말았다. ‘오, 이거 왠지 할 만 할 것 같은데?’
AM 10:00 웨이트 트레이닝
간단한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땀을 내고 시작한 훈련.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코트 구석에 마련된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 웨이트 트레이닝 센터에 도착했다. 선수들 모두 각자 자신의 음료와 차트를 챙겨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운동에 돌입했다. 드디어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몸 풀기에서 속으로 거만을 떨던 기자에게 야단이라도 치듯 고된 운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체험인데 싹 다 해봐야 한다”라는 선수들 말에 그들의 모든 운동 커리큘럼을 빠지지 않고 체험했다. 물론 박민범 배려로 무게와 횟수를 조금 줄이긴 했지만. 트레이닝 센터 안은 선수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함성으로 금세 가득 찼다. 선수들 눈에는 훈련을 향한 열기가 가득했는데, 내 눈은 멍해져만 갔다. 전역하고 4년 만에 잡은 운동기구로 잠자는 근육들을 깨우려니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것이다. 박민범 도움을 받아 한 두 개씩 개수가 올라가는 동안 기자의 목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이날 처음 만나 어색하던 선수들이 부들대는 기자가 딱해 보였는지 하나 둘 말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이선규는 “내일 생각해서 무리하지 말라”는 젠틀한 조언을, 김진만은 “무게를 좀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농담으로 훈련장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었다. 훈훈한 주위 분위기 덕분에 아직 코스가 반이나 남았다는 박민범의 절망적인 소리에도 무너지지 않고 겨우 트레이닝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기자님, 힘드세요?” 대답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은 기자에게 박민범이 이렇게 묻고는 이어서 “그래도 오늘은 근육 자극 주간이라 훨씬 적게 한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이것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운동을 한다는 것에 프로 선수들이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갖는 노력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AM 11:30 코트 러닝
고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잠깐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다시 한 번 기자를 절망에 빠트리는 박민범의 한 마디가 나왔다. “이제 뛸 거니까 준비하세요.” 코트 위를 뛰는 러닝 훈련이 남아 있다고 전해줬다. 이젠 쉬고 싶은 것보다도 지금 도망가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험을 시작할 때 가졌던 패기는 이미 사그라진 지 오래. 그렇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같이 뛰는 수밖에.
러닝은 어마어마했다. 한 바퀴를 일정한 시간을 정해 그 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하며 총 40바퀴를 뛰어야 했다. “선수들도 힘든 거니 조금만 힘내라”고 박민범이 위로했지만 선수도 힘들어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오히려 절망감이 더 커졌다. 한 바퀴, 두 바퀴 숫자가 올라갈수록 기자의 비어있는 속에서도 무언가 올라오려는 것 같았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이 누구일지 심히 원망스러웠지만, 사실 기자 본인이 낸 기획안이기에 어디 원망할 곳도 딱히 없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이 계속될 쯤, 울렁이는 속을 더는 참지 못해 결국 목표 수를 채우지 못하고 혼자 궤도에서 이탈해 진정시켰다.
속이 좀 진정되고 다시 코트 위로 돌아오니 선수들도 녹초가 된 채로 훈련을 마친 상태였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선수들도 저렇게 힘들어하는 훈련을 끝까지 받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했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사수 박민범을 찾아갔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말과 함께 기자 손에 걸레를 쥐어준 박민범. 운동이 끝나면 막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함께 걸레질을 할 막내가 들어온 것이 너무 좋다며 황택의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여기서도 막내 소리를 들으니 서러움이 살짝 밀려오긴 했지만 이것 역시 방도가 없다. 열심히 바닥을 닦았다.
PM 12:00 샤워 및 점심식사
고되게 흘린 땀을 씻어내려 선수들이 쓰는 샤워실에 함께 들어갔다. 이번 체험 중 기자가 가장 절망을 느낀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훤칠한 조각상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너무 부족한 기자의 몸통에 박탈감을 느끼며 최대한 빠르게 오전의 땀을 씻어내고 밥 먹을 준비를 했다. 훈련장에서 5분여 거리에 있는 선수 숙소 내에 마련된 식당. 정갈하면서도 풍성한 한정식으로 구성된 식탁에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식사했다.
기자 앞에 앉은 ‘몸짱’ 이강원은 요구르트를 넌지시 건네며 기자와 첫 마디를 나눴다. “아, 유산균 아무한테나 안 주는 건데(웃음).” 훈련장에서 느껴지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식사시간 선수단 분위기는 한껏 화사했다. 선후배 간의 위화감보다는 친근함으로 가득해 웃음꽃이 핀 점심시간은 프로 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면이었다.
PM 12:30 휴식시간, 부상 관리
점심을 먹고 선수들은 각자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보통 오전 훈련의 피로를 풀기 위해 낮잠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고 마음을 놓고 있던 기자에게 사무국 관계자가 “어디 아픈 곳 없냐?”라며 물었다. 그와 동시에 기자를 데리고 간 곳은 숙소 지하에 마련된 재활 센터. 오전 훈련으로 몸 곳곳 근육통을 제외하면 크게 아픈 곳은 없었지만, 이 곳에서 물리 치료를 받는 것도 경험이라는 관계자 권유에 평소 시원치 않았던 발목을 치료 받기로 했다.
손끝에 난 작은 상처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는 것처럼 느껴지는 과분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던 시간이 끝나고, 마침 빈 침대가 있어 선수들 숙소에도 함께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일일 룸메이트는 지난해 루키인 윙스파이커 신해성. 처음 만난 사람과 함께 두어 시간 동안 방을 쓴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색했을까? 방주인도, 손님도 서로 각자 핸드폰만 무심히 바라보던 그 때, 기자 손에 초콜릿과 물을 주고는 부끄러운지 쏙 이불 속으로 들어간 신해성이었다.
PM 02:30 오후 훈련 준비
휴식이 끝나고 오후 훈련이 시작되었다. 어색한 환경과 더불어 오후 훈련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 기자는 또 한 번 체육관으로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본격적인 훈련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선수들은 미리 체육관에 도착해 각자 몸을 풀고 있었다. 선수들 운동 시간에는 유독 스트레칭을 비롯한 몸 풀기 시간이 많았는데, 부상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눈에 띄었다.
평소 구기 종목을 즐기기 위해 준비운동을 생략하거나 무시하는 일반인들이 참 많은데, 이 부분은 기자를 비롯한 많은 생활 체육인들이 배우면 좋을 부분이었다. 오후 훈련도 짝꿍인 박민범과 함께했다. 오전 훈련 시간에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역시 남자들이 친해지는 데는 운동이 최고라고 했던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운동을 하며 약간은 친해진 느낌이었다.
PM 03:00 체력 운동 & 볼 운동
오전 웨이트 트레이닝은 기구를 활용한 운동이었다면, 오후 체력 운동은 대부분 맨손을 이용한 훈련이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기자와는 달리 선수들 움직임에는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팀 단위 훈련을 했다. 다 같이 몸을 푸는 시간을 갖고, 그 이후에는 둘씩 짝을 이뤄 작은 발판을 두고 하는 맨손운동을 실시했다. 빠른 스텝으로 순발력을 높이는 운동이었는데,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서 얼추 비슷하게 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선수들 속도는 따라갈 수 없었다.
휴식시간 덕분일까. 아니면 잠깐 받았던 발목 물리치료 덕분이었을까. 그래도 오후 체력 운동은 오전에 비하면 꽤나 따라갈 만했다. 그렇지만 기자 때문에 시간을 뺏기는 선수들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오후 볼 훈련부터는 빠져서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몸이 힘들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명색이 배구선수 체험인지라 공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다.
하지만 체험보다도 중요한 것이 선수들의 훈련에 방해되지 않는 것이기에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볼과 함께하는 훈련인지라 선수들에게서 더 빛이 나고 있었다. 베테랑부터 신인들 모두가 연습인데도 공 하나하나에 몸을 날려 받아내는 모습을 보니 진짜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트 위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 분 일 초를 배구에 쏟는, 프로 배구선수들이었던 것이다.
마무리
어느새 길고 길었던 하루 끝이 다가왔다. 기다렸던 체험 종료 시간이 왔는데 그제야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들었다. 지친 몸뚱이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훈련에 매진하는 선수들에게 방해가 될까 하여 미처 인사를 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몸이 힘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체육관을 빠져 나오는 발걸음은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멀리서 밖에 만날 수 없던 선수들을 아주 가까이서, 그것도 그들의 공간에서 함께 생활해본다는 것이 얼마나 뜻 깊은 경험인가. 그들의 숙소, 훈련장 등 생활공간에서 같이 지내본 사람은 몇 명 없을 것 아닌가!
눈으로만 보는 배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배구라는 기획 의도와는 잘 맞아 떨어진 체험이었고 단순히 운동만 같이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굉장히 뿌듯한 경험이었다. 한편으로는 다음 날 근육통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며 걱정도 많이 되긴 했지만, 이 정도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통증이지 않을까 반성도 많이 했다.
어린 시절 공부하는 것이 힘들 때면 부모님께 공부 말고 운동이나 시켜달라고 푸념을 하곤 했는데, 아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에도 계속 공부를 시켜주신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감사 말씀 드리고 싶다.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과감히 충고 한 마디 하고 싶다. 운동선수, 결코 쉽지 않다고. 경기장 뒤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땀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바쁜 훈련 와중에도 자세 하나하나에 신경 써준 사수 박민범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그리고 다양한 경험 가능하게 해주신 KB손해보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글/ 이광준 기자
영상/ 최원영 기자
사진/ KB손해보험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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