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또 우승. 명불허전 ‘최강’이라는 울타리를 튼튼하게 쌓아 올렸다. 어떤 대회든 나갔다 하면 우승컵을 쥐고 돌아온다. 양산시청 배구단이다.
이름난 선수 없어도 열심히 하는 팀
지난 2005년, 프로배구 V-리그가 출범했다. 프로로 전환되며 정원에 제한이 생겼고, 몇몇 선수들은 팀을 떠나야 했다. 당시 양산시에서는 도민체전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GS칼텍스에서 나온 선수들이 양산시청에 합류하며 체전에서 팀은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자연스레 체제가 갖춰졌다. 2006년 양산시청 여자 실업 팀이 정식으로 창단됐다.
현재 지도를 맡고 있는 강호경(38) 감독은 부산 모라초-경남여중-경남여고 코치를 역임하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KT&G(현 KGC인삼공사) 수석코치를 지냈다. 2013년 1월 1일 역대 네 번째 사령탑으로 양산시청에 부임했다. 현재는 2014년까지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서 뛰던 김보균 코치와 함께 팀을 이끌고 있다. 프로 팀에서 온 선수는 정유리 강혜수(이상 흥국생명) 김선희(현대건설)까지 3명이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유희옥(KGC인삼공사)과 정지윤(GS칼텍스)이 양산시청을 거쳐갔다.
(양산시청 강호경 감독)
강 감독은 양산시청을 “이름난 선수는 없어도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모인 팀”이라고 소개했다. 선수들 노력과 의지가 결실을 맺는 팀이라는 것. “양산시에서 꾸준히 지원을 해주신다. 시민들도 자주 경기장을 찾아와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다. 선수들이 저절로 동기부여가 될 수 밖에 없다. 삼박자가 잘 맞는 것 같다”라며 설명을 보탰다. 이어 “앞선 감독님들이 기틀을 잘 잡아주셨다. 양산시 지원 덕분에 우리는 실업 팀 중 유일하게 전용 연습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 장소까지 갖췄다. 오전에는 격일로 보강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평일 중 수요일을 제외하고 기술트레이닝을 실시한다”라고 덧붙였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팀이 최강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분명 강 감독 리더십도 한 몫 했을 터. 그는 “좋은 팀에 오게 된 것이 큰 행운일 뿐”이라며 입을 열었다. “처음 양산시청에 올 때 주위에서 왜 그 팀을 선택하느냐고 물었다. 아직도 내 결정에 무척 만족한다. 감독이 특별히 잘하는 건 없다. 나도 열심히 하지만 선수들이 정말 잘 따라준다”라며 겸손으로 일관했다.
대신 강 감독은 자신만의 지도 철학에 대해 들려줬다. 그는 훈련할 때 무언가 안 되면 될 때까지 시도해본다. 예를 들어 수비 5개를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수비가 된 경우에만 개수를 센다. “선수들이 하루 만에 완성될 순 없다. 특히 새로 들어온 아이들은 꾸준히 훈련을 해야 양산시청이란 팀 시스템에 빨리 녹아들 수 있다. 기존에 있던 선수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준다. 내가 훈련을 시키고 있으면 미처 보지 못 하는 부분이 있다. 선배들이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옆에서 파이팅을 외쳐준다. 코치이자 친언니처럼 말이다. 대화도 자주 하라고 했다. 플레이 하나를 하더라도 안 맞으면 서로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공을 더 높게 올려달라고 제스처를 하는 등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강 감독이 팀워크를 만드는 방법은 또 있다. “여자 팀에 오래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집사람은 내게 말 진짜 못한다고, 여자를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내가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표현이 서툴러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언제든 편하게 얘기하자고 했다.”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도 했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는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묻는다. 올해 4월 1~7일로 예정됐던 종별선수권이 연기되며 다같이 꽃을 보러 다녀왔다. 그동안은 매번 이맘때쯤 대회가 있어 꽃을 보지 못 했다. 선수들에게 편히 사복 입고 나오라고 해서 사진 찍고 놀았다. 나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좋아하더라. 다들 꽃구경이 처음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실컷 보고 커피 한 잔 하러 카페도 갔다”라며 미소 지었다.
함께 만드는 팀워크
양산시청에 몸담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2014년으로 과거여행을 떠났다. “2014 전국체전을 제주도에서 했다. 당시 우리는 체전에서 4년 연속 우승을 하고 5연패를 앞두고 있었다. 그 해에 모든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으로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이겼다. 그런데 전국체전 첫 경기에서 수원시청에 1-3으로 졌다. 그 경기가 아직도 제일 기억이 난다. 다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주축 선수 중 부상 선수가 3명이나 있어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잘하는데 다쳐버리니 아쉬웠다. 많이 배울 수 있는 경기였다. 선수들에게 아프면 욕심내지 말고 언제든 와서 말하라고 했다. 그 경기를 잊어버리지 말자고 했다.”
그는 한 경기를 더 꼽았다. “다음해였던 2015년 전국체전에서 다시 우승을 맛봤을 때다. 선수들이 엄청 울더라. 응원하러 온 시청 및 체육회 선수들도 정말 좋아했다. 아픈 기억이 있다 보니 우승이 더 값졌다. 한 번 처지기 시작하면 다시 올라오기 쉽지 않다. 우리가 흔들릴 때 다른 팀이 치고 나오기 때문이다. 금세 일어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강 감독은 제자들을 향한 진심이 남달라 보였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하다고 했다. “경기에서 승리하면 자주 받는 질문이 ‘MVP를 뽑아달라’는 것이다. 거기에 답변하기가 가장 힘들다. 누구 한 명을 꼽을 수가 없다. 우리 팀은 윙스파이커가 점수를 많이 내긴 하나 전반적으로 득점 분포가 고른 편이다. 수비와 연결하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우리가 잘할 때는 모두가 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신경 쓰는 선수들이 있다고 했다. “기존 선수들은 눈빛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눈치챌 수 있다. 새로 온 아이들은 더 신경 써서 지켜봐야 한다. 군대든 직장이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어딜 가나 신입사원들은 힘들다. 활발한 친구들은 빨리 적응할 수 있으나 내성적인 친구들은 시간이 걸린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누구나 다 도움이 필요하다.”
주장 이은아(29) 등 맏언니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강 감독은 “윗사람이 먼저 다가가기 어렵다는 걸 안다. 근데 우리 선수들은 잘한다. 언니들이 먼저 내려놓으라는 얘기를 했다. ‘내가 고참인데’ ‘나 어릴 땐 이랬는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절대 거리를 좁힐 수 없다. 선배들이 서서히 자신을 내려놓고 친근히 대해줬기에 후배들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양산시청은 실업배구연맹전(5월 19~24일, 전남 강진)에 임한다. “기본에 충실 하려 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이다. 파이팅도 열심히 외치고 각자 해야 할 몫을 해내면 경기를 잘 치를 수 있을 것이다.” 강 감독이 덤덤히 각오를 전했다. 라이벌을 묻는 질문에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나. 모든 팀이 다 라이벌이다. 실업 팀은 기량이나 실력이 다 종이 한 장 차이다. 우리가 한 발 덜 움직이고, 소리 한 번 안 지르면 금방 역전된다.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는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양산시청이 품은 미래
여자 실업 최강 팀을 이끈다는 부담감은 없을까. “없다면 거짓말이다. 언젠가는 내려갈 때가 올 것이다.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선수가 부족해 중간 허리층이 약하다. 차근차근 보강해야 한다. 베테랑 선수들이 나를 많이 이해해준다. 10년간 함께한 팀이다 보니 애정도 크다. 이 선수들이 떠날 때쯤엔 그 자리를 메울 다른 선수들이 있어야 한다. 팀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갑자기 공백이 생기면 어려워지니 말이다.”
그는 실업 팀으로서 고충도 털어놓았다. “잘하는 선수들은 드래프트를 통해 대부분 프로 팀에 가기 때문에 선수 수급이 조금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 선수들이 못한다는 건 아니다. 또 실업 팀은 프로에 비해 관심이 부족하다. 여기에 있는 선수들도 모두 열심히 하고 있으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산시청이 품은 미래 목표도 궁금했다. “올해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하고 싶다. 제일 중요한 건 전국체전이다. 이번에 우승하면 3연패가 된다. 재작년에 실패했던 5연패도 달성해보고 싶다. 더 멀리 보면 ‘여자 실업 팀=양산시청’이라는 공식이 생겨 깨지지 않았으면 한다. 항상 잘하고 싶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 되기를 바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원대한 꿈을 품에 안았다.
마지막으로 강 감독은 실업리그 전체의 발전을 염원했다. “실업 팀이 많이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있는 팀들이 내실을 다져 더 굳건히 자리잡았으면 한다. 실업배구연맹 박광열 회장 및 많은 임원들이 실업리그 안정화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남녀 모두 더 튼튼해졌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보다 많은 선수들이 프로의 문을 다시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실업리그가 선수들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자 발판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Mini Interview : 양산시청 주장 이은아
Q. 팀과 본인 소개부터 해주세요.
저는 양산시청 주장 이은아입니다. 올해 한국 나이로 30세가 되어 팀 내 유일한 30대예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양산시청에 입단해 지금까지 쭉 뛰었어요. 양산시청은 위기 때 더 똘똘 뭉치는 팀이에요. 동생들이 다 너무 착해요. 제가 제일 큰언니라 좋은 말보다는 잔소리를 하곤 하는데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잘 따라주더라고요. 평소에 표현은 잘 못 하지만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Q. 여자 실업 팀 최고가 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스타플레이어 출신 선수가 없는 대신 훈련을 더 성실히 해서 발전하려고 노력해요. 양산시청 운동이 힘들다고 소문이 났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저희는 코트에서 뛰는 선수도, 밖에서 도와주는 선수도 모두가 다 에이스라고 생각해요.
Q. 주장으로서 팀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해가 바뀌어서 또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네. 우리 항상 잘해왔잖아. 준비한 만큼, 훈련한 만큼 좋은 결과 얻도록 하자. 첫 경기부터 마지막 전국체전까지 열심히 해서 올해도 우승하는 거야. 최선을 다하자. 파이팅!
글/ 최원영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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