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리듯 다시 돌아온 코트'
코트를 떠나있는 사이 배구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다시 잡은 배구공. 여전히 배구는 재미있고 즐거웠다. 오지영, 그가 1년간 공백을 딛고 돌아왔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지쳤다. 힘들었다. 쉬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지영은 2016~2017시즌을 앞두고 임의탈퇴 신분이 된 채 한국도로공사를 떠났다. 그 시간 동안 치료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몇 개월간 배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배구를 향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시즌 막바지부터 다시 배구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후회가 남았다. 하기 싫어서 나왔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몸이 좋지 않았고 쉴 시간이 필요했다. TV 너머 코트를 바라 볼 때면 ‘내가 저기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영은 배구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운동을 그만두려 했던 건 아니에요. 그랬다면 후회라도 안 남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아파서 쉬어야 했죠. 한동안 배구를 보지 않다가 시즌 말미에 경기를 봤는데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후회가 남았어요.”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현실은 차갑게 와 닿았다. 한국 나이로 서른. 나이도 나이지만 1년간 공백이 있었다. ‘나를 불러줄 곳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구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때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았다.
6월 어느 날, 한국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어 한 시간 후 KGC인삼공사 서남원 감독이 연락했다. 고민도 하지 않았다. 바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오지영은 “제가 유난히 운동을 좋아해요. 배구에 대한 애착도 있고요. 그리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배구잖아요. 자부심도 있죠. 고민 없이 ‘네!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바로 짐을 쌌어요”라고 복귀를 결심한 이유를 전했다.
하지만 혼자 생각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남편 말이 큰 힘이 됐다. 5년간 연애 끝에 오지영은 지난 2015년 한 가정의 아내가 됐다.
“복귀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의 말이 제일 컸어요. 아이를 가져야 하는데 남편이 배려를 해줬죠.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포기하기에는 이르지 않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마음에 걸려서 ‘우리 애는 어떻게 해?’라고 물어봤죠. 그러니까 애보다 제가 먼저라고 말하더라고요. 아버지도 전화로 애 낳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며, 가서 배구 하고 오라고 하셨어요. 덕분에 편하게 복귀할 수 있었어요.”
갈아입은 유니폼
지난 6월 7일 KGC인삼공사와 한국도로공사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유서연과 오지영을 맞바꿨다.
기사가 터지자 주변에서 연락이 쏟아졌다. “다들 놀랐어요. 그 전에 미리 얘기가 된 거였냐고 묻더라고요. ‘아니다, 그 전날 전화 받고 바로 들어왔다’라고 했죠(웃음). 다들 정말 복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프로 세계가 냉정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저 역시도 진짜 복을 타고났구나 싶어요.”
오랜만에 잡은 배구공. 오지영은 그저 감사하다고 했다. “떠나있는 동안에도 배구를 하고 싶었어요. 다시 돌아오니까 꼭 친정에 돌아온 기분이에요. 코트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새로운 팀에도 적응하고 있다. “처음에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거의 10년간 도로공사에 있었는데 여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서남원 감독도 알고 있고 코치, 전력분석관도 익숙한 분들이더라고요. 선수들도 낯설지 않았어요. 한수지 선수와는 중학교 때 같이 운동을 했고 (이)재은 언니도 같은 팀에 있었고 (한)송이 언니도 제가 1년차 때 같이 있었어요. 그래서 적응하는데 무리는 없었어요. 오히려 너무 금방 적응해서 언니들이 ‘너 원래 여기 있던 선수 같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웃음).”
오랜만의 훈련은 힘들었다. 오지영은 “제가 러닝을 진짜 좋아하는데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러닝이 잡힌 주가 있으면 걱정부터 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쉬는 동안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배구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러닝과 근력운동, 스피닝을 꾸준히 했어요. 주말 빼고는 매일 했죠. 원체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요.”
그 덕분에 몸도 생각보다 빨리 올라왔다. 오지영은 “(한)송이 언니가 지금 팀에서 네가 몸이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였다. 이어 “지금 애들이랑 체력 운동하면 그래도 중상위권쯤은 되는 것 같아요”라고 자랑 한마디도 덧붙였다.
몸은 고되도 매일매일이 고마움 연속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기회잖아요. 그저 이렇게 운동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다음날은 더 좋아질 거란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트레이드 당시 서남원 감독은 “오지영이 오면서 김해란 공백을 어느 정도는 메워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앞서 오지영은 김해란 빈자리를 메운 바 있다.
2014~2015시즌이 한참이던 1월이었다. 주전 리베로 김해란이 올스타전에서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불의의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마쳐야 했다. 공백이 클 것이라 예상됐다. 그럴 것이 4라운드까지 팀 리시브와 디그의 25% 가량을 담당하고 있는데다가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도 팀 중심이 되었던 그였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김해란 빈자리를 5라운드 첫 경기부터 깔끔하게 메웠다. 여러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리시브와 수비에 나선 것도 있었지만, ‘대타’로 출전한 리베로 오지영 활약이 컸다. 그 덕분에 도로공사는 주전 리베로의 부상 이탈에도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며 9연승을 내달렸다.
경기 후 당시 서 감독도 만족감을 표했다. “오지영은 서브 리시브와 수비에서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다. 그 동안 (김)해란이에게 가려져 있어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다. 리베로로서 충분히 좋은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이후 오지영은 주전으로 발돋움하며 뒷선을 책임졌고 팀 정규리그 우승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2년여 시간이 흐른 현재, 오지영에게 다시 김해란 공백을 메워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부담감은 당연히 있다. 오지영은 “전에도 해란 언니 공백을 채웠던 적이 있어요”라며 잠시 회상에 잠기더니 이윽고 말을 이어 나갔다.
“한 때 ‘과연 내가 해란 언니를 대체할 만한 선수인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다 부질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물론 많은 분들이 해란 언니만큼 해주기를 바라겠죠. 그런데 오히려 부담감을 가지면 제가 원래 가지고 있는 실력도 안 나올 것 같아요. 예전 인터뷰에서도 ‘나는 못한다, 해란 언니만큼 못해준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한 적 있어요. 한 번 비교되면 끝도 없거든요. 결국 제가 얼마만큼 해주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보고 배울 부분은 분명 있다. 오지영은 “언니 밑에서 오래 있었어요. 같이 있으면서 많은 걸 보고 배웠죠. 항상 언니 영상을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요”라고 전했다.
이런 감독 또 없습니다
서남원 감독도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지영은 “제가 운동을 쉬고 들어왔기 때문에 아직 특별히 주문하시는 건 없어요. 기다려주시는 중이세요. 기죽지 말고 눈치 보지 말라고 하셨어요”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 말 속에 담긴 배려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1년을 쉬고 들어왔잖아요. 다른 팀에서 운동을 하고 온 거라면 괜찮지만 자칫 다른 선수들이 ‘저 언니처럼 놀고 와도 배구 할 수 있네’라고 생각할까봐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감독께서 너 성격대로 자신감 있게 행동하라고 말씀 하셨죠.” 오지영은 “그 말을 잘 따르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서 감독과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2013시즌 4위에 머물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도로공사는 2013~2014시즌을 앞두고 서남원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그렇게 함께 정규리그 우승을 맛봤던 그들. 그러나 서남원 감독이 재계약 불발로 2015~2016시즌을 앞두고 팀을 떠난 데 이어 그 다음 시즌 오지영도 그만뒀다. 그리고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둘은 KGC인삼공사에서 재회했다.
다시 만난 감독은 여전했다. 오지영은 “개인적으로 든든해요”라며 믿음을 드러냈다. “선수들은 감독이 믿어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실력 발휘가 돼요. 그런데 감독께서는 끝까지 선수들을 믿으시죠. 말뿐이 아니에요. 행동으로도 나를 믿는다는 것이 보여요.”
사람 좋은 인상을 하고 있는 서남원 감독이지만 화를 낼 때도 있다. 못했을 때? 실수 했을 때? 아니다. 선수들이 해보지도 않고 지레 위축되면 화를 낸단다. 오지영은 “선수들이 무언가 해보려고 하다가 실수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으세요. 오히려 다시 해보자고 격려하시죠. 해보지도 않고 뒤로 빠지면 화를 내세요. 그래서 선수들도 실수해도 자신 있게 운동할 수 있어요. 이런 감독을 만난 적이 없어요. 감독께서 맡은 팀 성적이 좋은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감독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팀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오지영의 입 꼬리가 다시 한 번 올라갔다. 그는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에요. 다 친언니, 동생 같아요. 그 덕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어요. 모두가 하나같이 다 밝고 착해요. 모난 선수 없이 두루두루 다 잘 지내고 있어요. 분위기를 봐서는 이번에도 성적이 잘 나올 것 같아요. 연습 때 보면 서로를 끊임없이 독려해요. 팀워크가 정말 최고입니다”라고 전했다.
우유와 칭찬에 넘어간 꼬마아이,
프로가 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언니가 그에게 “배구 하자”라고 했다. 그 언니의 또 다른 정체(?)는 바로 배구부 주장. 무서워서 덜컥 한다고 했다. 그렇게 배구부에 들어갔는데 웬걸. 처음 본 감독은 더 무서워 보였다. 어린 마음에 안 하겠다고 말하고 나와 버렸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고 5월이 됐다. 오지영은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등교하던 어느 날, 배구부 감독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 우유 하나와 함께 한마디를 건넸다. “지영아, 너를 보면 기분이 좋아.”
그 한마디에 다시 배구를 시작했다. “우유 때문에 운동을 한 건 아니에요(웃음). 감독께서 저를 예뻐해 주셨어요. ‘아, 무서운 사람이 아니구나, 아빠 같은 사람이구나’하는 마음에 하게 됐죠.”
그렇게 배구공을 잡은 지 어언 십 수 년. 프로라는 이름으로 코트에 들어선 지도 벌써 9시즌이 흘렀다. 오지영에게 지나온 시간들의 의미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듯 했다. 오지영은 “눈물이 날 것 같아요”라는 말로 입을 뗐다. 이어 “굴곡도 있었고 마음고생도 많았죠. 마음이 아픈 날도 있었어요. 제 감정을 숨기고 지낼 때가 많았어요”라고 전했다. 그래서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는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었어요. 지금 이 팀에 와서 제 꿈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돼서 너무 감사해요.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커요”라고 덧붙였다.
화제를 바꿨다. 배구 인생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언제인지 물었다. 오지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두 경기를 꼽았다.
때는 2013년 12월 11일 GS칼텍스전. 앞서 1, 2세트를 따낸 도로공사는 3세트를 비록 상대에게 넘겨줬지만 4세트 심기일전하며 승리까지 단 한 점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24-16에서 오지영 서브 차례가 됐다.
그리고 그 서브는 그대로 득점이 됐다. 도로공사가 승리를 확정한 순간이었다. 이날 오지영은 서브로만 3득점을 챙겼다. 하지만 그가 이 경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득점 그 자체보다는 서남원 감독과 팀에 무언가 보여줬다는 것. “제가 비시즌 때는 이상하리만큼 서브가 잘 안 들어가요. 오히려 경기 때가 더 편할 정도에요. 그러다 보니 감독께 믿음을 주지 못했나 봐요. 시즌 초반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어요. 속으로는 ‘들어가기만 해봐라’하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죠. 그리고 그날 서브로 경기를 끝냈어요(웃음).”
그렇게 존재감을 알린 오지영은 2월 27일 흥국생명전에서 사고(?)를 쳤다. 그의 인생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원 포인트 서버’ 오지영은 2세트 17-8로 앞선 상황에서 김미연 대신 교체 투입돼 ‘깜짝 후위공격’을 코트에 꽂으며 몸을 풀었다. 이어 서브에 나선 그는 연이어 5개 서브에이스를 성공시키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의 함성을 자아냈다. 이는 역대 최다 연속 서브에이스 기록이기도 하다.
사실 서브는 오지영의 전매특허. 2007년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오지영은 윙스파이커에서 리베로로 전향했지만 서브 실력을 인정받아 종종 원 포인트 서버로 코트를 밟았다. 2009~2010 V-리그 올스타전 서브콘테스트에서는 95km로 ‘서브퀸’에 오르기도 했다.
그 역시도 “제가 지금은 리베로지만 서브를 잘 때리잖아요. 중요한 순간 투입 돼 서브에이스를 기록하면 정말 배구하길 잘했다 싶어요. 이때를 위해서 운동하나 싶기도 하고. 제가 때리고 소름 돋을 때도 있어요”라고 웃어 보였다.
서브 비결이 따로 있을까? 그러자 그는 ‘경험’과 ‘자신감’을 언급했다. “키 때문에 프로에 와서는 리베로로 전향했지만 그 전까지는 공격수였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파이크 서브를 했죠. 그리고 프로에 와서도 계속 서브를 해왔잖아요. 아무래도 계속 때리다 보면 저만의 느낌이라는 것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자신감이죠. 나를 의심하면 안돼요. 제 경험 상 너무 생각이 많아지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미스하든 아니든 때리자’라는 마음으로 해요.”
이어 그는 “서남원 감독께서도 저한테 리베로가 1번이라고 하셨는데 계속 서브 연습하라고 하세요(웃음). 아직 제 서브를 놓지 못하셨나 봐요”라고 미소 지었다.
최고의 리베로를 꿈꾸며
자신을 믿어 준 구단, 그리고 자신의 꿈을 지지해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생긴 오지영. 그는 스스로를 욕심 많은 선수라고 일컬었다. 그런 그에게 은퇴 전까지 무엇을 이뤄보고 싶은지 묻었다. 그러자 냉큼 이름을 날려보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0년 동안 제 스스로를 꾹꾹 눌러왔어요. 이제는 저한테도 기회가 왔으니까 기록도 세워보고 제 이름을 알려보고 싶어요.”
물론 우승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오지영은 “제가 프로에 있는 동안 아직 통합우승을 한 번도 못해봤어요. 정규리그 우승은 해봤지만 그 짜릿함이 다르잖아요. 이번에는 제가 처음부터 뛰면서 우승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어렵게 다시 잡은 배구공. 그래서일까? 오지영은 인터뷰 내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자주 올렸다. 그리고 조그마한 바람 하나를 전했다. “후배들이 저를 봤을 때 ‘저 언니는 체구가 작아도 도태되지 않고 악착같이 하는구나’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이어 그는 김해란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해란 언니는 플레이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도 정말 본받을 점이 많은 선배에요. 닮고 싶어요. 그리고 최고 리베로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잖아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저를 떠올리면 서브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도 언젠가는 최고 리베로로 기억되고 싶어요.”
문득 그에게 배구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눈물 짓던 그였지만 또 그를 웃게 하는 것 역시 배구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질문 하나를 남겼다. “오지영에게 배구란?”
그러자 그는 생각에 잠긴 끝에 ‘비타민’이라고 했다. “비타민을 먹으면 사람이 활력이 생기잖아요. 저한테 배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을 주고 또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에요. 배구가 있음으로 나라는, 오지영이라는 사람을 표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한테 비타민이 중요한 것처럼 저한테 배구도 없어서는 안돼요.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Episode
KIA 포수 김민식 팬이 된 그녀
인터뷰 준비를 위해 오지영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던 중 발견한 사진 한 장. 바로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의 김민식과 김선빈 사진.
오랜 기아 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원래 야구는 관심도 없었단다. 우연히 두 선수를 보고 좋아하게 됐다고. 특히 김민식 이야기가 나오자 입이 귀에 걸린 오지영이다. “김민식 선수가 잘생겼어요(웃음)”라며 사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 그는 “제 포지션도 그렇고 야구에서 포수도 잘 안 보이는 포지션이잖아요.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잘하는 모습에 애착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더 응원해요. 김민식 선수 때문에 기아 팬이 됐어요”라고 덧붙였다.
오지영에게 넌지시 “나중에 시구하러 가면 좋겠어요”라고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자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진짜 꼭 시구하고 싶어요. 김민식 선수가 받아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김민식 선수 사랑합니다!”라고 활짝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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