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 집중력을 높여야 하는데요’, ‘역시 하이볼 처리 능력이 좋은 선수군요’ 올 시즌 V-리그 중계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하이볼(High Ball)’이다. 배구팬에게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말, KBS N이 올해 중계방송에 본격 도입한 개념이다(이하 하이볼 자료는 올 시즌 1라운드, 기타 기록은 11월 18일 기준).
(우리카드 파다르)
chapter 1
개념 편-하이볼의 정의
하이볼은 말 그대로 ‘High(높은)+Ball(공)’이라는 뜻이다. 외국인 선수들이 세터와 호흡을 맞출 때 ‘하이!’라고 외치는 것에서 착안한 단어다. 하지만 단순히 공이 높이 올라온다고 해서 하이볼은 아니다. 하이볼은 리시브가 흔들리거나 혹은 상대 공격을 수비로 걷어 올린 뒤 어렵게 연결하는 공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KB손해보험 알렉스가 강 스파이크로 공격을 시도했다. 이를 삼성화재 부용찬이 디그로 걷어 올렸다. 세터 황동일이 코트 엔드라인까지 달려가 박철우에게 공을 연결했고, 박철우가 빠른 공격으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박철우가 해결한 공이 하이볼이 된다. 이후 서브권을 가져간 삼성화재 류윤식이 강 서브를 넣었다. KB손해보험 손현종이 리시브를 했는데 공이 옆으로 튀어 세터 황택의가 달려가 급히 이강원에게 공을 올렸다. 이때 이강원이 때리게 된 공도 하이볼이다.
즉, 하이볼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완벽히 세팅되지 않은 볼’인 것이다.
개념 편-왜 하이볼인가
그렇다면 하이볼이 왜 중요해진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디그가 늘어나고, 리시브 정확도가 떨어지며 자연스레 하이볼을 처리해야 할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먼저 디그가 늘어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트라이아웃이다. 남자부는 두 시즌, 여자부는 세 시즌째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선수 연봉이 남자부는 30만달러(세금 별도, 차기 시즌 재계약시 35만달러, 보너스 및 승리수당 별도), 여자부는 15만달러(세금 포함, 차기 시즌 재계약시 15~18만달러 이내 구단 재량, 보너스 및 승리수당 별도)로 제한됐다.
자유계약시절과 비교해 데려올 수 있는 외인 폭이 좁아졌고, 선수들 기량도 과거보다는 한 단계 낮아졌다. 트라이아웃 이후 V-리그에 온 외인 중 좋은 선수도 많았지만 전반적인 공격 결정력은 다소 떨어졌다. 공격을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만큼 상대 수비수가 걷어 올리는 공이 많아지고, 하이볼을 때려야 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1라운드 디그 기록을 보면 지난 시즌 트라이아웃을 도입한 남자부는 7개 구단 세트당 평균 디그 최저~최고 개수가 6.48~9.04개였으나 올 시즌에는 8.38~11.13개로 향상됐다. 여자부도 2015~2016시즌 18.55~21.18개였던 디그 개수가 지난 시즌에는 21.61~23.83개로 늘어났다. 다만 올 시즌에는 17.8~20.9개로 다시 감소했다.
(한국도로공사 이바나)
남녀부 모두 리시브 정확도도 낮아졌다. 특히 남자부는 올 시즌 ‘서브’가 주요 키워드로 대두될 만큼 위력적인 서브 쇼가 이어지고 있다. 리시브를 정확히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에게 서브에이스를 주지 않기 위해 리시버가 공을 일단 높이 띄워놓고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때 세터는 발 빠르게 움직여 공을 연결해야 한다. 공격수가 완벽하게 세팅되지 않은, 하이볼 처리를 하게 되는 상황이다.
남자부는 최근 다섯 시즌 동안 지속적으로 리시브 정확도가 감소해왔다. 7개 구단 세트당 평균 리시브 최저 및 최고 개수가 2013~2014시즌 9.183~11.883개에서 올 시즌 7.053~8.848개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여자부도 마찬가지다. 2015~2016시즌 7.638~8.704개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이번 시즌에는 6.171~8.394개가 됐다. 그만큼 리시브가 더 자주 흔들렸다는 뜻이다.
응용 편-오픈 VS 하이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이볼과 오픈 공격, 같은 개념이지 않을까? 정답부터 말하면 ‘아니오’다. 오픈은 세터가 공격수에게 공을 패스할 때 네트 양끝에 달린 안테나보다 높이 올리면 모두 해당된다. 하이볼과 다른 점은 리시브나 수비가 잘 돼 세터가 좋은 위치에서 정확하게 세팅하는 공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도로공사 임명옥이 리시브를 완벽히 해 세터 이효희에게 공을 보냈다. 이효희가 서있던 자리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고 손쉽게 이바나에게 공을 패스했다. 이바나가 높게 올라온 공을 상대 코트에 내리꽂았다. 이 경우 오픈 공격은 맞지만, 하이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반대로 현대건설 세터 이다영이 수비된 공을 향해 뛰어가 언더핸드 패스로 어렵게 엘리자베스에게 공을 띄웠다. 이때 엘리자베스가 처리한 공은 하이볼이면서 동시에 오픈 공격이다.
같은 오픈이어도 쉽게 공격을 시도하면 그만큼 성공률이 높아지고, 하이볼처럼 어려운 공을 처리하다 보면 성공률이 비교적 낮아진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 하이볼이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 잠깐! 그럼 퀵오픈은 뭔가요? 오픈이 안테나보다 높게 가는 공이라면 퀵오픈은 안테나보다 낮게 가는 공을 말한다. 단, 안테나를 기준으로 해도 기록원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다. 또한 타점이 높은 외국인 선수 등은 오픈과 퀵오픈을 구분할 때 기준점이 근소하게 올라가기도 한다.
chapter 2
적용 편-남자부, 파다르 전성시대
이번 시즌 1라운드 하이볼 자료를 바탕으로 남자부 하이볼 기록을 분석해보자. 단, 현대캐피탈 안드레아스는 경기 출전 빈도가 낮아 하이볼 총 시도 수가 현저히 적다. 때문에 성공률을 놓고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는 점을 참고하자. 하이볼을 득점으로 연결해주는 선수는 대부분 해당 팀 에이스다. V-리그에서는 거의 외국인 선수들이 담당한다.
외인 비중이 제일 높은 팀은 우리카드였다. 아포짓 스파이커 파다르는 팀 내 하이볼 점유율(이하 점유율)이 61%로 남자부 7개 구단 선수를 통틀어 최다였다. 객관적인 시도 수 역시 157개로 제일 많았다. 파다르는 하이볼 성공률(이하 성공률)도 49%로 현대캐피탈 윙스파이커 안드레아스(총 시도 62개, 성공률 52%)를 제외하면 가장 높았다. 사실상 외인 중 험한 볼을 가장 잘 처리하는 능력이 확인된다. 확실한 공격 결정 능력과 강한 서브, 젊은 패기까지. 팀 막내지만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기세를 몰아 1라운드 MVP를 거머쥔 파다르다.
삼성화재 윙스파이커 타이스도 빼놓으면 섭섭할 만한 기록을 자랑했다. 점유율 58%, 성공률 43%(총 시도 136개)로 파다르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삼성화재 동료들이 “우리 팀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타이스”라고 입을 모은 이유가 있었다. 파다르와 타이스는 지난 시즌에 이어 두 시즌 연속 최고 외인임을 입증하고 있다. 정규리그를 기준으로 지난 시즌 타이스가 총 득점 1위(1065점), 파다르가 2위(965점)를 차지했다. 그렇게 많은 공격을 시도하고도 높은 성공률을 유지했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타이스가 전체 4위(성공률 53.94%), 파다르가 5위(53.08%)에 이름을 올렸다.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두 선수.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대로 한국전력 아포짓 스파이커 펠리페(점유율 47%, 성공률 33%)와 대한항공 아포짓 스파이커 가스파리니(점유율 55%, 성공률 34%)는 아쉬움을 남겼다. 펠리페는 팀 내 삼각편대 중 한 명인 서재덕이 무릎 수술로 전력에서 이탈한 뒤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전광인의 충분한 조력자가 되지 못 했다. 2라운드 중반까지 치른 9경기 중 단 한 경기에서도 공격 성공률 50%를 넘지 못 하고 고개를 떨궜다.
가스파리니도 예전 같지 않은 경기력으로 체면을 구겼다. 지난 시즌 장기 레이스를 치르며 총 823득점, 공격 성공률 51.6%로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그였다. 올 시즌에는 1라운드 공격 성공률이 43.7%로 저조했다. 2라운드를 기점으로 반등에 나섰지만 앞으로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삼성화재 박철우)
국내선수 하이볼 비중이 더 높은 팀도 있었다. 현대캐피탈은 안드레아스(점유율 29%, 성공률 52%)보다 문성민(점유율 37%, 성공률 35%)이 더 많은 하이볼을 다뤘다. 문성민은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을 챔피언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하이볼 정확도는 좋지 않았지만 올 시즌도 토종 아포짓 스파이커로서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다음으로 국내선수 비중이 높은 팀은 KB손해보험이었다. 윙스파이커 알렉스(점유율 42%, 성공률 40%) 뒤를 이강원(점유율 33%, 성공률 45%)이 훌륭히 받쳐줬다. 비시즌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 아포짓 스파이커로 기량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이강원. V-리그에서도 반짝 활약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강원은 하이볼뿐 아니라 전체 공격 점유율이 지난 시즌 15.6%에서 올 시즌 29.3%로 대폭 상승했다. 그만큼 팀 내 입지가 커지고, 활약상이 많아졌다.
그런데 문성민, 이강원보다 더 대단한 선수가 있다. 국내 남자 공격수 중 최고로 손꼽히는 아포짓 스파이커. 삼성화재 박철우다. 올 시즌 삼성화재가 11연승을 질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타이스와 박철우 원 투 펀치 파괴력 덕분이다. 박철우는 하이볼에서도 국내선수 중 제일 좋은 성공률을 과시했다. 팀 내 점유율 31%, 성공률 48%였다.
그는 하이볼 외에도 공격 관련 지표에서 대부분 상위권에 올랐다. 공격 종합 1위(성공률 59.17%), 오픈 1위(성공률 55.70%), 퀵오픈 1위(성공률 63.64%), 후위 4위(성공률 58.33%)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심지어 12월 19일 현재도 박철우 기록은 하락세 없이 그대로다. 퀵오픈은 성공률 64.29%로 2위가 됐으나, 후위 공격에서는 성공률 60.44%로 순위를 2위까지 끌어올렸다). 바야흐로 박철우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용 편-여자부, 토종의 힘을 ‘더’ 보여줘
여자부도 남자부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GS칼텍스를 제외하곤 모든 팀이 외인에게 하이볼을 맡겼다. 남자부보다는 국내선수 비중이 비교적 높았다. 외인 중에서는 KGC인삼공사 아포짓 스파이커 알레나가 총 시도 수에서 157개(점유율 44%, 성공률 32%)로 제일 많았다. 그러나 성공률은 시도 수가 비슷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낮은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KGC인삼공사는 거의 매 경기 알레나가 원맨쇼를 펼쳤다. 그는 올 시즌 총 공격 점유율이 46.3%에 달한다. 상대 블로커들은 KGC인삼공사가 하이볼을 처리하려 하면 알레나를 집중 견제한다. 윙스파이커 한송이나 최수빈 쪽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알레나 성공률은 더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흥국생명 윙스파이커 심슨이 156개(점유율 45%, 성공률 40%)를 시도해 알레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이볼 개수와 팀 내 점유율이 거의 비슷한 두 선수. 그러나 성공률에서는 심슨이 8%p나 앞서 판정승을 거뒀다. 이렇듯 고군분투해줬던 심슨이기에 고관절 파열 부상으로 인한 이별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여자부 선수들 중 팀 내 하이볼 점유율이 가장 높은 이는 누구일까? 주인공은 현대건설 윙스파이커 엘리자베스다. 그는 점유율을 무려 56%나 기록했다. 총 146개를 때려냈고, 성공률은 35%였다.
국내선수 몫이 큰 팀은 흥국생명이었다. 앞서 언급한 심슨 못지 않게 윙스파이커 이재영 책임감도 컸다. 이재영은 점유율 37%, 성공률 29%로 심슨을 거들었다. 총 시도 수가 128회로 국내선수를 통틀어 1위였다. 이는 세터 조송화가 그만큼 이재영을 믿고 있다는 해석도 된다.
(한국도로공사 박정아)
한국도로공사와 IBK기업은행도 걸출한 국내 공격수들에게 하이볼을 보냈다. 도로공사는 윙스파이커 박정아(점유율 33%, 성공률 37%)가 아포짓 스파이커 이바나(점유율 41%, 성공률 44%)를 도왔다. 박정아는 타 팀 국내선수들과 견줬을 때 성공률이 제일 높았다(현대건설 황연주가 성공률 38%를 기록했지만 시도 수가 48회로 낮았다). 187cm 장신에서 뽑아내는 공격이 시원시원했다.
IBK기업은행은 윙스파이커 고예림(점유율 31%, 성공률 28%)이 같은 포지션 메디(점유율 44%, 성공률 40%) 뒤를 지탱했다. 아포짓 스파이커 김희진도 있었지만, 그는 1라운드에 팀 사정상 미들블로커까지 병행하느라 바빴다. 세터 염혜선과 이고은은 메디 다음으로 고예림을 택했다.
GS칼텍스는 여자부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국내선수 비중이 더 높은 팀이었다. 아포짓 스파이커 듀크가 점유율 34%, 성공률 47%를 선보인 데 반해 윙스파이커 강소휘는 점유율 36%, 성공률 29%를 올렸다. 물론 성공률은 듀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GS칼텍스 하이볼 점유율을 보면 듀크와 강소휘에게 골고루 양분돼있다. 나머지는 윙스파이커 표승주에게 향했다. 즉 세터 이나연이 듀크, 강소휘, 표승주 삼각편대에게 골고루 공을 나눠줬다는 뜻이다.
chapter 3
심화 편-하이볼이 던지는 메시지
V-리그에서 자주 대두되는 이슈가 있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내선수들도 실력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하이볼 기록만 놓고 보면 외국인 선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여자부는 외인들이 더 많은 하이볼 점유율을 차지했으나 국내선수들보다 훨씬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이는 승부처에서 외인을 바라보게 되는 이유이자 동시에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또한 성공적인 하이볼 처리가 무조건 순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이볼은 점수를 내거나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일부일 뿐이다. 승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순 있지만 팀 순위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진 않다.
(IBK기업은행 메디. 오른쪽)
예를 들면 남자부의 경우 하이볼 성공률이 가장 높은 팀은 우리카드(46%)였다. 2라운드 중반까지 트리플크라운(한 경기 내에서 후위공격, 서브, 블로킹 각 3개 이상)을 다섯 번이나 기록한 파다르가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카드는 1라운드 최하위(승점 6점 2승 4패)에 그쳤다.
여자부도 흥국생명 심슨이 시도 수 대비 준수한 성공률을 보였지만 팀은 꼴찌(승점 4점 1승 4패)였다. 당시 윙스파이커 이재영 침묵이 길었고, 미들블로커 포지션이 취약했으며 세터 조송화까지 흔들린 것이 문제였다.
본 기사에서 제시한 하이볼 기록은 1라운드 수치만을 반영하고 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보다 유의미한 기록들이 쌓여 V-리그 관전을 도울 것이다. 우리는 하이볼 기록을 통해 리시브가 흔들렸을 때 위기 대처 능력, 디그 후 반격으로 흐름을 가져오는 능력 등을 가늠해볼 수 있다. 하이볼 개념을 정확히 익혔으니 다시 배구 코트 위로 시선을 돌려보자.
글/ 최원영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자료제공/ KBS N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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