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 여자배구는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김연경(30·엑자시바시)이라는 세계적인 스타가 건재하고, 이재영(22·흥국생명)-이다영(22·현대건설) 쌍둥이 자매, 김희진(27·IBK기업은행), 양효진(29·현대건설), 박정아(25·한국도로공사) 등 인기 선수들이 여자배구의 주가를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미래의 V-리그 스타가 될 여고부를 향한 관심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반면 대학배구 여대부의 경우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여대부는 독자적인 리그도 없고 출전하는 대회도 극히 적어 그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리그가 활성화된데다 신인드래프트 참가자가 많은 남대부와 다른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대부 대회가 열리고 있고, 그 대회에 선수들은 학교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나선다.
이에 <더스파이크>는 베일에 가려진 대학배구 여대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베일에 가려진 그곳, 여대부
한국배구연맹(KOVO) 규정에 따르면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 해당 연도 시즌 개막전에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선수로서 드래프트를 신청한 선수, ▶ 프로출범 이전에 은퇴한 선수로 드래프트를 신청한 선수, ▶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해외에서 배구선수로 활동하다 귀국해 드래프트를 신청한 선수, ▶ 귀화선수로서 드래프트를 신청한 선수(단, 귀화 신청 접수 후 귀화승인이 완료되지 않았으나 전 구단의 동의로 귀화 절차 중인 선수) 등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거의 모두 고교 3학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7~2018시즌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는 15개 고등학교에서 40명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중 16명만이 V-리그의 선택을 받았다. 작년은 지난 2014~2015시즌(46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원이 신청한 해였다. 하지만 같은 해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않은 인원도 23명이나 있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으로 한 학교에 2명 정도만이 V-리그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얘기다. 한국중고배구연맹에 등록된 여고 배구부는 총 19개로, 각 학교 3학년 학생이 단 1명뿐이라고 해도 19명이다. 하지만 19개 학교 중 4개 학교에서는 아무도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한국배구연맹 규정상, 졸업예정자가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을 경우 다섯 시즌 동안은 드래프트에 신청할 수 없다. 사실상 프로 진출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았거나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도 하고, 아예 배구를 그만두기도 한다. 그리고 한 가지 경우의 수가 남아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 곳, 대학 배구부 진학이다.
현재 한국대학배구연맹에 등록된 대학 여자팀은 총 5개교로 단국대, 우석대, 목포과학대, 서울여대, 호남대가 있다. 지난 2016년 서울여대 배구부가 창단된 후 올해 호남대 배구부가 창단되면서 여대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대학졸업 후 드래프트를 통해 V-리그에 진출한 선수는 장소연 SBS스포츠 해설위원(44, 전 한국도로공사)이 유일하다. 장소연 해설위원도 실업리그에서 뛰다가 은퇴한 후 경기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다시 V-리그에 진출하기 위한 절차로 드래프트에 참여했을 뿐, 대학 배구부 출신은 아니었다.
사진 : 해남대회에서 우승한 우석대
여자부 5개팀이 펼친 해남, 청양대회
매년 여름방학이면 대학배구연맹(KUVF)이 전국대학배구대회를 개최한다. 올해는 해남(㈜동양환경배 전국대학배구해남대회)과 청양(㈜동양환경배 전국대학배구청양대회)에서 대회가 진행됐다. 전국대학배구대회에는 대학리그에 참가하는 12개 학교는 물론, 남자 2부 대학에 포함된 우석대와 호남대도 출전한다. 여자부 5개 대학도 모두 출전해 1년 동안 쌓은 실력을 겨룬다.
여대부는 5개 대학이 모두 한 번씩 겨루는 풀리그전으로 최강자를 가린다. 지난 6월 29일 열린 해남대회에서는 우석대가 4전 전승으로 여대부 왕좌를 차지했다. 7월 16일 개최된 청양대회에서는 단국대가 우승컵을 차지했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코트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체육관을 찾은 관중에게 박수를 받았다.
사진 : 단국대 정상옥 감독
지난 여름 두 대회 모두 우승했던 단국대는 올해 첫 대회인 해남대회에서 우석대에 왕좌를 내줬다. 단국대는 청양대회에서 다시 만난 우석대에 3-0 완승을 거두며 설욕에 성공, 청양대회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선수 전원이 배구선수 출신인 단국대는 탄탄한 기본기와 조직력을 앞세워 여대부 최강자로 우뚝 섰다. 1999년 교내 동아리로 시작한 단국대는 정상옥 감독 부임 후 선수 출신 학생들을 수급해 차근차근 팀을 다져왔다. 정상을 탈환한 정상옥 감독은 “선수들이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배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라며 “각자 트레이닝을 철저히 해서 팀으로 훈련을 할 때에도 준비가 잘 되어있다”라는 비결을 밝혔다.
정상옥 감독의 목표는 전국체전이다. 독자적인 리그가 있는 남대부와 달리 여대부는 전국체전이 1년 중 가장 큰 대회이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전국체전에 맞춰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1학기 때는 대회가 없는 만큼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준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며 여대부의 현황을 전했다. 이어 “여대부에도 리그가 있으면 더 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상시에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리그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의 학업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소신 있게 말했다.
사진: 단국대 주장 김민선
4년간의 대학대회를 마무리한 단국대 주장 김민선(170cm, 4학년, WS)은 “후회 없이 대회를 치르고 싶었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져서 아쉽다”라면서도 “그래도 마지막에 우승을 해서 기분 좋다”라고 말했다. 김민선은 주장으로서 단국대 배구부를 이끌었지만 졸업 후에는 배구공을 놓기로 결정했다. 그는 “스포츠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한 만큼 선수가 아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진로를 결정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대학에서 학업에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삶에서 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청양대회에서 단국대에 무릎을 꿇은 우석대는 대회를 3위로 마감했다. 우석대는 신입생 최유민(177cm, MB)의 활약으로 1, 2위 단국대와 목포과학대와 승수(3승 1패)가 같았지만 점수득실률에서 밀려 3위에 머물렀다. 전주근영여고 배구부 출신인 최유민은 고교 시절 그의 모습을 눈여겨 본 우석대 정기남 감독에 의해 우석대 배구부에 발을 들였다. 최유민은 “줄곧 전주에서 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전북 지역에서 배구를 계속 하고 싶어서 우석대 진학을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우석대는 가까이에 위치한 전주근영여고와 함께 훈련한다. 학기 중에는 매일 오후 3시 전까지 강의를 듣고 3시부터 5시까지 훈련을 진행한다. 방학 중에는 오전, 오후, 야간까지 여느 프로팀 못지않은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다. 최유민은 “근영여고 선생님들께서도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계신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최유민은 우석대에서 4년간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 실업팀 진출을 꿈꾸고 있다. 그는 “실업팀에서 뛰면서 실력을 더 쌓은 다음에는 전라북도체육회에서 일을 하고 싶다. 전라북도체육회에서 전북 지역 중·고등학교 배구부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계획을 밝혔다.
사진 : 우석대 최유민
전국대회 3개뿐, 선수 수급난 심화
대학 여자팀이 1년에 출전할 수 있는 전국대회는 단 3개뿐이다. 대학배구연맹에서 주최하는 전국대학배구대회와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이 전부다. 대학리그, 종별선수권대회 등 3월부터 10월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남자대학부와 차이가 크다. 부족한 건 대회 수만이 아니었다. 남대부와 여대부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치러지는 데도 불구하고 여대부 선심은 두 명뿐이었다.
팀 내 사정도 열악하다. 청양대회를 치르는 동안 여대부 벤치에서는 감독을 제외한 코치, 트레이너 등 코칭스태프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선수 엔트리를 겨우 맞춰 교체 선수 없이 대회에 참가한 팀도 여럿 있었다. 겨우 엔트리를 채웠다고는 해도,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배구공을 잡은 선수도 있어 팀 간 전력 차가 크게 나타났다.
사진 : 서울여대
2016년 창단된 서울여대는 선수 출신과 비선수 출신으로 팀을 이뤄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 출신이 대다수인 타 대학에 비해 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큰 점수 차로 경기가 끝나곤 한다. 서울여대는 해남대회와 청양대회를 전패로 마무리했다. 단국대, 우석대 등을 상대로 채 10점을 따내지 못한 세트도 적지 않았다.
현재 여대부는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우선 배구부를 운영하는 대학이 5개교로 너무 적다. 고교선수들이 대학 진학을 망설이고, 대학은 선수 수급이 어렵기때문에 수준 높은 대회 운영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악순환이 끊이지 않아 여대부의 발전이 더딘 상황이다.
오승재 대학배구연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임기 내 여자대학배구리그(이하 여대리그) 추진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다만 오 회장은 이에 대해 금전적인 문제, 선수 수급 문제 등으로 “올해 바로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오승재 회장은 지난 1월 18일 열린 이·취임식에서 여대리그 신설에 직면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오 회장은 “리그에 참여한다는 학교가 부족하다. 대학 팀 내 선수들이 적어 리그 운영이 어려운 이유에서다. 올해는 힘들지만 임기(3년) 내로 꼭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다짐한 바 있다.
소속 선수가 가장 적은 팀은 올해 창단한 호남대다. 호남대는 단 7명의 선수로 청양대회를 치렀다. 단국대와 우석대도 10명으로 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팀들은 리그에 참가하더라도 부상 선수가 발생하면 교체할 선수가 없어 리그를 끝까지 소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남자대학부 14팀(1부 대학 11팀, 2부 대학 3팀)의 평균 인원수가 14.43명인데 반해 여대부는 10명이 겨우 넘는 10.6명에 불과하다. 팀 수도, 선수 수도 턱없이 부족한 게 여대부의 현실이다. 올해 호남대가 창단되면서 V-리그 출범 당시 여자부 팀과 수는 동일해졌지만 그 전에 중원대, 건동대 배구부가 해체되면서 여대부 자체의 규모는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 여자부가 독자리그을 운영하려면 적정한 팀과 선수가 필요하다. 한국배구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어느 정도 여대부 활성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관건은 누가 그 지난한 작업을 주도하는지에 있다. 결국 대학배구연맹의 지원과 관심속에 대학당국이 배구부 육성에 나서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청양을 떠나면서 그런 날이 언제쯤 올 것인가 그려봤다.
글/ 이현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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