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9 여자부 V-리그가 개막한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1월 11일, 디펜딩챔피언 한국도로공사가 외국인 선수를 교체했다. 이바나 네소비치(30·세르비아)의 부진이 그 이유였다.
새로 도로공사에 합류한 외국인 선수는 지난 시즌 GS칼텍스에서 화력을 뿜었던 파토우 듀크(33·세네갈)였다. 새 시즌, 새 팀에서 코트를 밟게 된 파토우 듀크는 우리에게 친숙했던 ‘듀크’라는 이름이 아닌, ‘파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V-리그 팬들 앞에 섰다. 파튜의 합류와 함께 한국도로공사도 다시 한 번 정상을 향한 여정에 나섰다. 한창 순위 경쟁이 치열했던 12월 12일, 김천 한국도로공사 연습체육관에서 파튜를 만났다.
다시 온 러브콜 “많이 이기고 싶어요”
지난 5월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6개 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한 파튜는 이전 소속팀인 태국 슈프림 촌부리로 돌아갔다. 지난 11월, 그는 한국도로공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그렇게 남들보다 늦게 V-리그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한국에 온지 한 달 정도 흘렀습니다.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을 것 같아요.
이적부터 합류까지 모든 일이 급하게 진행되긴 했어요. 그래도 팀원들을 비롯해 주변에서 정말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경기에서 100%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뿐이죠.
시즌 중 이적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네요.
한국과 태국에 모두 에이전시가 있는데 도로공사가 저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함께 얘기를 했어요. 태국에 있는 에이전시나 소속팀 촌부리나 저에게는 가족 같은 존재라서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선 모두가 축하해줬어요. 좋은 기회이니 꼭 잡으라고 하더라고요. 언제든지 제가 원한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죠.
홀가분하게 태국을 떠날 수 있었겠네요.
그럼요. 촌부리와는 관계가 정말 좋아요. 지난 시즌이 끝나고 나서도 바로 촌부리로 돌아가서 아시아여자클럽챔피언십 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었어요. 촌부리는 늘 제게 연습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해주는 곳이에요.
11월 10일 저녁에 입국해서 11일 바로 경기를 뛰었는데 힘들진 않았나요.
물론 몸이 피곤한 건 있었죠. 하지만 경기할 때 중요한 건 정신력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가다듬었죠. 두 시간만 쉬면 충분하다고 다짐하면서 바로 경기를 준비했어요.
올 시즌 첫 인터뷰에서 ‘도로공사에서 이효희와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일단 지금도 여전히 손발을 맞춰가고 있는 단계예요. 이효희 선수뿐만 아니라 도로공사에는 베테랑 선수들이 많이 있어서 이 선수들이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조언을 따라가려고 하는 중이에요. GS칼텍스에 있을 때는 제가 맏언니여서 주로 동생들을 다독여주는 역할이었는데, 도로공사는 언니들이 저를 이끌어주고 있어요.
맏언니였을 때가 편했나요, 아니면 지금처럼 언니들이 있는 게 편한가요.
형제들 중에 제가 첫째기 때문에 편한 건 맏언니가 편하긴 해요. 그래도 함께 하는 동료가 저보다 언니든 동생이든 상관없이 제게 조언을 해준다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지난 시즌에 비해서 파튜의 공격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낮아진 점유율이 신경 쓰이지는 않은가요.
제가 도로공사에 온 이유는 더 많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예요. 얼마나 많은 공을 때리는 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난 시즌에 많은 점유율을 가져갔던 이유는 이소영 선수나 표승주 선수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이든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죠.
이제 도로공사에서 생활도 익숙해졌을 것 같은데, 상대팀일 때의 도로공사와 우리팀일 때의 도로공사는 각각 어떤 느낌인가요.
제가 GS칼텍스에 있을 때 도로공사와 경기하는 걸 굉장히 즐겼어요. 도로공사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 선수들을 상대한다는 게 좋은 자극이 됐거든요.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늘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도로공사에 온 뒤로 김종민 감독님께서 본인에게 특별히 요구했던 부분은 없나요.
시즌 중에 합류했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감독님께서 절 부른 이유는 아마 제가 한국에서 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경기 중일 때나 훈련 중일 때나 틈틈이 자신감을 갖고 하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세요. 아무래도 작년과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저를 편하게 해주려고 하시는 말씀 같아요.
숙소에서 주로 생활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도로공사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고 싶었어요. 외부에 따로 집을 마련해주셨지만 숙소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까 여기가 더 익숙하네요. 그리고 숙소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굳이 이 추위를 뚫고 밖에 있는 집까지 갈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요.(아프리카에서 온 파튜는 유독 추위를 많이 탄다고 한다)
새 시즌, 새 출발, 새 마음
파튜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는 소식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됐지만, 더욱 큰 화제가 됐던 건 새로운 이름이었다. 지난 시즌 내내 듀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파튜가 갑자기 새 이름으로 나타나자 잠시 혼란을 빚기도 했다.
V-리그에 돌아왔을 때 ‘파튜’라는 이름을 듣고 많은 팬들이 생소해했습니다. 이름을 바꾼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매번 새로운 일을 맞이할 때 변화를 주는 편이에요. 변화를 주는 것에 대한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웃음). 이름이 됐든 스타일이 됐든 새롭게 하는 편이죠.
파튜와 듀크 외에 다른 이름을 쓴 적도 있었나요.
프랑스에 있을 때는 ‘크러치’라는 이름을 썼어요. 세네갈 국가대표로 뛸 때는 ‘야나’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고요.
새 헤어스타일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이것도 변화의 일부분이겠죠.
그렇죠. 원래는 짧게 자르려고 했는데 통역이 이태원에 있는 미용실을 추천해주더라고요. 김천에는 머리를 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기도 했고요. 미용실에서 여러 스타일을 보던 중에 지금 이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바꾸게 됐어요.
김천에서 생활은 어떤가요.
김천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해 멀리 떨어져있기는 하지만, 전혀 문제될 건 없어요. 작년에 수도권에서 생활할 때도 밖에 잘 안 돌아다녔거든요(웃음). 시즌 중에는 좀 게을러진다고 할까요. 정해진 패턴대로만 움직이는 편이에요(파튜는 super lazy라는 표현을 썼다). 방에서 영화를 본다든가 하는 저만의 루틴이 있어서 불편한 점은 전혀 없어요.
김천은 배구 열기가 가장 뜨거운 도시로 소문이 나있는 데요. 김천을 연고지로 하는 선수로서 느끼기에는 어떤가요.
김천 팬들이 정말 열심히 응원을 해주세요.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마찬가지로요. 경기에서 지는 날에도 항상 끝까지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팬들의 응원이 늘 마음에 와닿아서 큰 힘이 되고 있어요.
팬들이 한국말로 응원할 텐데, 알아듣는 편인가요.
제 이름을 말한다는 건 저를 응원해준다는 의미겠죠? 사실 연습할 때나 경기 중에 매일 듣는 특정한 단어들을 제외하고는 한국말을 거의 못 알아들어요. 어렵더라고요.
아무래도 한국 생활이 두 번째이다 보니까 적응하는 건 문제가 안 될 것 같아요.
한국 문화가 세네갈 문화랑 비슷한 편이에요. 어른을 공경하고 막내가 주로 심부름을 하는 그런 것들이요. 그래서 한국으로 왔을 때 마치 세네갈인 것 같은 데자뷰가 느껴졌어요.
세네갈의 배구 개척자, 선수 그 이상의 역할
세계배구는 남녀를 통틀어 유럽 또는 아메리카 대륙이 흐름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아시아는 꾸준히 도전하는 입장이다. 어느 정도 배구 인프라가 갖춰진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와 달리 아프리카는 배구에 대한 인지도 조차 희미하다. 파튜는 세네갈에 배구라는 종목을 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제 새해가 됐습니다. 2019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새해를 시작할 때 특별한 목표를 설정하지는 않아요. 지금 생각해보자면 세네갈에서 사회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 정도가 될 수 있겠네요. 어린 선수들이 배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세네갈을 비롯한 아프리카에서는 여자가 스포츠를 비롯한 활동에 참여하기 굉장히 힘든 환경이거든요. 어린 친구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배구선수를 꿈꾸는 여자 아이들이 계속 배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이전에도 이런 활동을 하신 적이 있나요.
매년 조금씩 하고 있어요. 공개적으로 어떤 단체나 기관을 통해서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요. 세네갈은 10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비시즌 동안 세네갈에 머무르면서 주변 아이들에게 용품을 지원해주는 정도죠.
다른 아프리카 선수들도 파튜처럼 아이들이나 배구 꿈나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나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해요. 케냐 같은 경우는 배구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서 정부 차원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요. 하지만 세네갈은 완전 불모지나 다름없어요. 시간이 될 때마다 세네갈에 배구라는 종목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한국의 김연경 선수와 같은 역할일까요.
비슷할 것 같아요. 비시즌에 세네갈에 가면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인터뷰거든요. 최대한 여러 매체를 통해 세네갈에 배구를 알리고 있어요.
파튜를 보면서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도 있겠네요.
그렇게 말해주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웃음). 이런 친구들한테 도음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예전에 한 번 어떤 여자아이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자기는 배구선수가 되고 싶은데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걱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그 아이의 부모님과 통화도 하고 만나서 대화도 나누면서 설득을 한 적이 있어요. 배구가 얼마나 좋은 스포츠이고 제가 배구선수로서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줬죠. 아이가 배구선수로서의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설득했어요.
세네갈에서 홀로 배구를 알리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나 부담감도 클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책임감에 대해서 절대 부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즐기고 있죠. 제가 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목표가 세네갈에 배구를 널리 알리는 거였어요. 배구를 시작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배구가 뭔지 알아?’라고 물어보면 항상 ‘모른다’라는 대답뿐이었거든요. 지금도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배구 불모지나 다름 없는 세네갈에서 파튜는 어떻게 배구를 알게 됐나요.
TV에서 우연히 배구 중계를 봤어요. 그 때가 14살이었는데, 워낙 세네갈에서 배구의 입지가 좁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배구를 배운 건 19살 때부터였어요. 그 전까지는 남자아이들과 함께 배구를 배웠죠.
열악한 환경에서 배구를 배우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시작이 가장 힘들었죠. 환경도 환경이었지만 가족들이 제가 배구하는 걸 반대해서 몰래 나가기도 했어요. 배구하는 걸 숨기기 위해 드레스를 입고 나간 적도 있어요. 특히 할머니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죠. 배구를 못하게 하려고 자꾸 집안 일을 시키셨어요. 밖에 못 나가게 하려고요. 다행히 어머니가 저를 도와주셔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느라 늦는다는 거짓말로 시간을 벌어주셨죠. 덕분에 틈틈이 배구를 배울 수 있었어요. 어머니가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해주셨죠(웃음).
늘 숨어서 할 수는 없었을 텐데, 직접 배구를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18살이던 2002년에 세네갈 정부로부터 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세네갈에서는 매년 각 종목에서 남녀 선수 각각 한 명씩을 선정해 ‘올해의 선수’같은 느낌의 상을 주는데, 2002년에 제가 선정된 거죠. 제가 상을 받는 장면이 TV에 방영된 걸 할머니가 보시고 나서 그 이후로는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지금은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활약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죠.
선수 은퇴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 세네갈 배구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예전부터 해오던 고민이었어요. 조금씩 준비도 하고 있고요. 나중에 은퇴를 한 뒤에 세네갈에서 배구교실을 운영하는 걸 계획하고 있어요. 이걸 위해서 지금도 세네갈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요.
비록 지금의 이 인터뷰는 한국 잡지에 실리겠지만, 이 자리를 통해 세네갈 정부나 배구 지도자들에게 한 마디 전하자면요.
우리 세네갈 선수들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종목에서 세네갈 국기를 펄럭이고 있습니다. 비록 단 한 명뿐일지라도 세네갈의 이름으로 코트를 누비고 있으니 세네갈에도 좋은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글/ 이현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