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모두 다른 ‘포지션 이름’ 무엇이 맞고 틀릴까요?

이현지 / 기사승인 : 2019-02-24 0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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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스파이커, 아웃사이드 히터, 레프트. 이 세 가지는 모두 배구의 한 포지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구분, 설명은 없다. 어느 방송 해설위원은 ‘레프트’라고 말하고, 또 어떤 감독은 ‘윙스파이커’라고 부르다 보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다양한 명칭으로 포지션을 부르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용어가 더 정확하고 맞는 것일까. 기사는 이 의문점에서 시작한다.



한국서 쓰는 포지션, 외국과는 다르다?

먼저, ‘포지션(position)’이 무엇인지 한 번 알아보자. 포지션은 영어단어로 ‘위치, 자리’의 의미에서 시작된 것으로 스포츠에서는 ‘경기장 내 위치 혹은 특정 선수가 맡은 임무’를 의미한다. 즉 스포츠에서 포지션은 단순히 ‘위치’ 개념을 넘어 그 선수가 경기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포함하는 말이다.

배구에는 크게 다섯 가지 포지션이 있다. 수비 전담선수 리베로, ‘세트’를 담당하는 세터, 중앙에서 속공과 블로킹을 담당하는 미들블로커(센터), 날개 공격수인 윙스파이커(레프트)와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로 나뉜다.

최근 다양한 국제대회가 개최되면서 포지션 이름이 통일되지 않고 여러 개가 통용되고 있다. 리베로와 세터는 어느 곳에서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미들블로커, 윙스파이커, 아포짓 스파이커 셋이다. 국제배구연맹(FIVB)과 한국에서 부르는 명칭이 달라 방송 캐스터, 해설자 사이에서도 혼선이 생겼다.
다양한 포지션 명칭에 대해 논하기 전에, 기초지식을 확인하고 넘어가자. 6인제 배구에 존재하는 로테이션 제도,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세 가지 포지션 명칭에 대해 알아본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레프트, 라이트, 센터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여기서는 국제배구연맹(FIVB)에서 사용하고 있는 포지션 명칭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는 <더스파이크>가 오래 전부터 고집해온 부분이다.

배구 로테이션에 대한 이해

배구 포지션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6인제 배구에 존재하는 ‘로테이션 제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각 선수는 어택라인을 기준으로 전위 세 명, 후위 세 명으로 나뉜다. 전위 선수들과 달리 후위 세 명은 어택라인 안쪽에서 공격이 불가능하다(네트 위가 아닌 아래에서 상대에게 공을 넘기는 건 가능하다).

각 팀 선수들은 서브가 타구되기 전까지 이 대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포지션 폴트(Position Fault)’가 주어진다. 단 위치는 고정된 것이 아닌 상대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어, 4번 선수의 경우 5번 선수보다 앞에, 3번 선수보다는 왼편에 위치해야 한다. 이를 이용해 팀 전술에 따라 자유로운 선수 배치가 가능하다. 서브할 공이 선수 손에 맞는 순간부터는 코트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리시브 팀이 득점할 경우 선수들은 시계방향으로 한 자리씩 옮긴다. 1번 자리에 오는 선수가 서브를 넣게 된다. 서브를 넣는 팀이 득점하게 되면 로테이션을 하지 않는다. 한 선수가 연속 서브를 넣게 된다. 매 세트마다 각 팀은 선수 로테이션 순서를 정해 감독석에 전달한다. 이는 기록심판, 방송사, 기록원에게도 동일하게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1, 4번에는 윙스파이커, 3, 6번에는 미들블로커, 2, 5번에는 세터와 아포짓 스파이커가 배치된다. 물론 팀 전략에 따라 이는 변동될 수 있다.

윙스파이커= 아웃사이드 히터
직역하면 ‘날개 공격수’로 네트 양쪽 끝에서 공격하는 선수들을 의미한다. 윙스파이커는 단순히 공격 뿐 아니라 서브리시브에도 가담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레프트’로 표기한다. 해외에서는 ‘아웃사이드 히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FIVB나 AVC에서는 윙스파이커 표현을 쓰지만 해외 매체에서는 아웃사이드 히터를 더 자주 쓴다.

한국에서는 라이트를 ‘리시브 가담을 하지 않고 큰 공격을 담당하는 선수’라는 의미로 부르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서 라이트는 ‘오른쪽 날개 공격수’로 주 공격 방향이 오른쪽일 뿐 리시브에도 가담하는 선수를 의미하기도 한다(한국도로공사 문정원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포짓 스파이커
아포짓 스파이커는 ‘반대편 공격수’라는 의미다. ‘왼쪽 공격수와 반대에 있는 공격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세터’와 대각을 이루는 공격수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배치(앞의 로테이션 설명 부분 참고)에 따르면 아포짓 스파이커는 세터와 계속 전·후위가 다르게 배치된다. 전위에 세터가 포함될 경우 전위 공격수는 두 명으로 줄어 공격력이 반감된다. 이 경우 팀 공격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후위 공격이 필수적이다. 이 역할을 하는 선수가 아포짓 스파이커다. 아포짓 스파이커는 전·후위를 가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맡는다. 공격에 좀 더 치중할 수 있도록 리시브에는 최대한 가담하지 않는다(이 점이 윙스파이커와 가장 큰 차이가 된다). 한국에서는 ‘라이트’를 아포짓 스파이커와 동일한 것처럼 혼동하고 있지만 실은 차이가 있다. 아포짓 스파이커는 오른쪽으로 한정된 공격을 하는 선수가 아니다. 왼쪽에 들어오는 선수가 둘이나 있기에 주로 오른쪽에서 할 뿐이다.

미들블로커= 센터, 미들, 미들히터
팀 중앙을 책임지는 포지션. 중앙 공격과 함께 팀 블로킹 중심을 잡아야 하는 자리다. 공격보다는 블로킹 능력이 우선시되는 포지션이어서 ‘블로커’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앙 공격 역시 팀 내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히터, 스파이커’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후위에 갈 경우 수비전담 선수인 리베로와 교체된다.

사실상 미들블로커의 경우에는 큰 오해 소지가 없다. 공격수로 볼 것이냐, 혹은 블로킹을 주로 하는 선수로 볼 것이냐 하는 시각 차이일 뿐 ‘미들’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지 않는다. 혼선을 주는 건 날개 공격수들이다. 분명 역할 차이가 있다. 어떤 선수는 리시브를 받고 어떤 선수는 받지 않는다. 또 배구 전술이 갈수록 진화함에 따라 선수들은 한 쪽에서만 공격하지 않는다. 팀에 따라 왼쪽에서 공격하는 선수가 리시브를 하기도, 오른쪽에서 공격하는 선수가 리시브를 받을 때도 있다. 이에 대한 구분은 각 지역별로 다 다르다. 어떤 곳은 날개 공격수를 윙스파이커로, 어떤 곳은 아웃사이드 히터로 부른다. 또 ‘히터’인지 ‘스파이커’인지도 통일이 안 된다. 비슷한 의미지만 엄연히 다른 단어다. FIVB에서도 여러 포지션 명을 중용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혼란스럽다.


(사진 : KOVO 공식 홈페이지에 표기된 포지션 명칭)

엄한주 교수 “국제 표준은 없다”

그렇다면 어떤 포지션 명칭이 가장 정확한 것일까. 이에 대한 배구 전문지식을 알기 위해 아시아배구연맹(AVC) 경기위원회 간사인 엄한주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먼저 달라진 포지션 이름이 생긴 이유가 궁금했다. 엄 교수는 이에 대해 “지금으로부터 4년 전부터 시행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 FIVB, AVC는 각 대회 마지막에 MVP와 함께 기록별 우수 선수를 선정해 개인상을 수여했다. 그러나 이를 ‘기록별 우수 선수’에서 ‘대회 베스트 7’을 선발하는 것으로 변경되면서 이런 변화가 시작됐다.



(사진 : 지난 2018여자세계선수권을 마친 뒤 인터넷에 올라온 시상식 기사. '베스트 아웃사이드 히터'를 뽑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출처_VOLLEYMOB홈페이지)

엄 교수는 “포지션 별로 최고 선수를 뽑아 상을 주자고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포지션 이름에 대해 재고가 들어갔다. 이에 등장한 포지션이 ‘아웃사이드 히터(Outside hitter), 미들블로커, 아포짓 스파이커’였다”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아웃사이드 히터는 윙스파이커(레프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렇게 상을 주는 것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설명할 만한 기준이 없다. FIVB에서도, AVC에서도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조차 찾기 힘들다. 실제로 FIVB와 AVC 모두 매 대회 선수 포지션에는 ‘윙스파이커’를 공식적으로 쓰고 있지만 수상할 때에는 ‘아웃사이드 히터’라고 부른다. 이런 차이에 대한 설명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사진 : FIVB 공식 홈페이지에 등록된 배구 매뉴얼. 그래픽과 설명 간에도 통일이 안 된 모습이다.)

엄 교수는 이렇게 통일이 안 된 포지션 명에 대해 ‘현장에서 어떻게 부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포지션 이름은 대륙별로 차이가 있는데, 현장에서 어떤 말을 쓰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상 국제 표준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라는 게 엄 교수 말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명쾌한 답변을 내릴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처럼 과거에 쓰던 표현을 계속 쓰는 나라도 있고 바뀐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곳도 있다.

이 문제를 단순히 ‘부르는 이름의 차이’ 정도로 생각해선 오산이다. 모든 발전은 탄탄한 기초 아래서 이뤄진다. 배구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규칙, 명칭 등 가장 기본적인 게 통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통일 표기가 없다는 건 배구가 가진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엄한주 교수는 “물론 하나로 통일된 용어가 필요한 건 맞다. 그래야 기록이 축적되고 발전이 있다. 그러나 이를 주도적으로 할 기관이 없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다들 쓰고 있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FIVB에서 이에 대해 몇 차례 이야기가 나온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되고 있지 않다. 사실상 지금 쓰고 있는 용어가 본인들 선에서는 헷갈리지 않으니 그냥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해외 매체에서는 윙스파이커보다는 아웃사이드 히터를 선호하는 편이다. 출처_VOLLEYMOB홈페이지)

그렇다면 어떻게 불러야 좋을까

가장 좋은 해결책은 FIVB에서 통일된 명칭을 쓰도록 규정하는 것이지만 아직까지 정해진 기준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좋을지를 생각해보자. 먼저, <더스파이크>에서는 FIVB 표기에 따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면 국제연맹에서 쓰는 것을 따르는 게 맞다’라고 보는 것에 있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 쓰고 있는 명칭은 지금의 로테이션 제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포지션 상으로는 레프트, 라이트지만 시작할 때는 로테이션에 의해 자리해야 한다. 레프트 선수가 오른쪽에, 중앙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또 현대 배구는 공격할 때 한 쪽에서만 하지 않는다. 시간차 공격으로 날개 공격수가 중앙 쪽으로 잘라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배구의 꽃이라고 불리는 ‘중앙 후위공격(파이프, pipe)’은 그 이름 그대로 ‘중앙’에서 시행된다. 레프트, 라이트 개념은 로테이션 제도가 없는 아마추어 9인제 배구에 더 어울리는 명칭이다.

엄한주 교수는 다른 생각이었다. 엄 교수는 “라이트, 레프트 표기가 잘못된 건 아니다. 학술적으로는 이 표기가 가장 정확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해외에서도 ‘윙스파이커’라고 하면 라이트인지, 레프트인지 다시 되묻는다. 서브리시브가 된 이후 선수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그 자리에 의해 정해진 명칭이라고 생각하면 쉽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또한 “배구는 종목 특성상 너무 많은 변수가 있다. 로테이션 상 왼쪽에 있을 때는 왼쪽에서 공격하고 오른쪽에 있을 때는 오른쪽 공격을 하는 선수가 있다. 이 선수는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이런 변수들이 많아 포지션 이름을 규정화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을 이었다.

Outro

사실 이 기사는 ‘무엇이 맞고 어떤 점이 잘못 되었는가’를 따지기 위해 기획됐다. 그러나 주요 단체에서 정확한 명칭을 규정하고 있지 않아 방향을 바꿨다. 아직까지 포지션 이름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은 배구를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선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한국에서 성행하는 다른 프로스포츠와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축구, 농구, 야구는 세계 곳곳에서 거대 자본들이 들어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축구는 유럽, 농구와 야구는 미국이 주도해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 중이다. 이들이 중심이 돼 각종 통계, 과학적인 전략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과 연구가 이뤄진다.

반면 배구는 이런 점이 약하다. 주도할 만한 국가, 리그가 없으며 제대로 된 체계도 잡혀있지 않다. 아직까지 포지션 이름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건 이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글/이광준 기자
사진/더스파이크DB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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